좋은 이웃 수행전통의 수용 필요
좋은 이웃 수행전통의 수용 필요
  • 박영재
  • 승인 2015.01.30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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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1.

성찰배경: 저는 40여 년 간의 참선여정을 통한 내적 체험을 바탕으로 그동안 불교 언론 매체 등을 통해 일상의 삶 속에서 성찰에 요긴한 주제들을 골라 기고해 오고 있는데, 이제 이 글들을 바탕으로 다듬고 수정 보완해 새롭게 <불교닷컴>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성찰하고자 합니다. 먼저 저는 지난 2012년 4월 무렵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건설된 도로 개설로 끊어진 숲과 숲을 이어주며 생태계를 풍부하게 할 수 있다는 생태통로에 대한 당시의 최근 기사를 접하고 이와 연관된 성찰의 글을 <금강신문>(2012년 5월 1일)에 ‘수행법에 분별없어야’란 제목으로 기고했었습니다. 사실 한국도 이제 다종교 다문화 시대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에 그저 ‘불교가 최고다!’라고 맹목적으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종교와 종파를 초월해 ‘좋은 이웃 수행전통의 적극적 수용은 필수’란 제목의 글을 필두로 해서 앞으로, 크고 작은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흔들림 없이 마음공부를 지어 가는데 매우 요긴한 주제들을 다루어가고자 합니다.

생태계 복원을 위한 생태통로 확충

지난 2012년 3월 당시 살고 있던 동네 뒷동산인 매봉산을 산책하다가 청설모 한 마리와 마주쳤는데 겨울철을 건강하게 잘 견뎌낸 이 녀석을 보고 들고양이들이 적지 않은 이 지역에서 아직 멸종하지는 않았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종의 건강한 다양성이나 로드킬을 막기 위해 동물들이 다닐 수 있는 생태통로를 전국 도처에 만들었었는데 무용지물이 태반이라는 등, 생태통로의 실효성에 관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강원지역 21곳의 생태통로를 대상으로 1년간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모든 생태통로에서 멧돼지, 고라니, 삵, 노루, 너구리, 오소리 등 다양한 야생동물의 이동이 확인됐다는 최근 기사를 접하고 반가웠습니다.

한편 최근 서울시가 과거 도로를 개설하면서 단절된 남산에서 매봉산까지 연결하는 생태통로 조성 공사를 지난 2012년 하반기까지 완공할 예정이라고 하니, 보다 다양한 종들이 활발히 왕래하며 본래의 야생 생태계로 점차 복원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사실 학문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이공계 분야의 경우 한 지도교수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고 있는 다른 저명 학자들 밑에서 박사후과정을 몇 차례 거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넓은 연구시야를 갖게 되고 그 이후 독자적으로 학문 활동을 활발히 전개할 수 있게 됩니다.

돌이켜 보면 저의 경우 비록 국제저명학술지에 6편의 논문을 게재하며 1983년 2월 서강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기는 했으나, 솔직히 1983년 3월부터 바로 강원대 조교수로 부임해 독자적인 연구역량이 부족했었습니다. 그러나 그후 세계적인 학자들이 다수 활약하고 있던 뉴욕주립대(스토니브룩) 이론물리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거치면서 보다 폭넓은 연구시야를 갖추고 박사학위 연구주제를 뛰어넘어 다양한 주제에 대해 당당하게 독자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고 판단됩니다.

이웃 수행전통의 적극적인 수용은 필수

한편 수행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중국 남송 시대에 확립된 간화선 수행법은 그 이후 유학승이나 귀화승을 통해 한국과 일본으로 자연스럽게 본질적으로는 똑같은 수행법이 전승되었으나, 어느 시점 이후 교류가 단절되면서 각 지역의 문화풍토 속에서 그 특성에 맞게 독자적으로 전개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은 공산화 이후 그 맥이 끊어졌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으나 근세에 허운 선사나 성엄 선사 같은 걸출한 스승들을 배출해 오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본토 출신으로 대만으로 건너가 법고산사를 개산한 성엄 선사의 경우 이 분이 지은 <눈 속의 발자국>(탐구사, 2011년)을 보면, 누가 이 책을 읽어도 가히 인류의 영적 스승으로 존경 받을 만한 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득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분은 중국 조동종과 임제종의 법맥을 함께 이은 선사이면서도, 비록 이웃 수행전통이라고 할지라도 좋은 것들은 즉시 수용하여 제자들을 지도하는데 적극 활용하셨습니다. 보기를 들면, 이 분은 일본 유학 시절 일본 선사 문하에서도 수행을 했었는데, 중국선이니 일본선이니 하는 분별없이 그때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적극 활용하여 초심자들을 지도하셨습니다.

“선은 중국에서 육조혜능 선사 이후 3無(無念, 無相, 無住)의 태도로 수행할 수 있으면 복잡한 이론이나 수행법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중략)

나는 예전 선사들의 가르침에 찬성하지 않았다. 요즘 사람들이 3無를 바로 성취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먼저 그들에게 ‘수식관數息觀’을 가르쳤다. 이것은 일본의 내 스승들에게서 가져온 방법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1965년 무렵부터 수식관이 제가 속한 선도회의 초심자들을 위한 기초 선수행법으로 일찍이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물론 저도 입문 시절인 1975년 종달 이희익 선사 문하에서 간화선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수식관’ 수행을 익히고 일상의 삶 속에서 그 효과를 톡톡히 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한편 성엄 선사께서는 저서 <선의 지혜>(탐구사, 2011년)에서 더욱 명료하게 동아시아의 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논의를 중국·일본·미국에 한정하고 있지만, 한국에도 강한 선(Son)의 전통이 있고 한국 선사들[미국에서 활약한 숭산 선사의 선포교 활동을 접했다고 판단됨]도 미국에 와 있습니다. 제가 추측하기로, 이들 각 나라의 선불교는 그 지역과 환경에 따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교의 기본 원리는 만물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선 전통이라고 해서 이러한 근본원리가 적용되지 말란 법이 있습니까?

저는 우리가 (이 선 센터에서) 무엇을 하는지, 왜 그렇게 하는지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중국선은 이렇게 하고, (한국선은 이렇게 하고,) 일본선은 이렇게 한다.”고 말해 봐야 쓸데없습니다. 그러면 불가피하게 불공정한 비교, 의견 대립, 언쟁, 경쟁을 가져오게 됩니다. 만일 그런 논의가 어느 쪽이 다른 쪽보다 더 낫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 사이에서 논란과 적대감을 촉발한다면, 그들은 좋은 수행자들이 아닙니다. 그런 행동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수행자들은 자기 자신의 수행과 남들을 돕는 일에 신경 써야 합니다.

어떤 차이점이 존재하든 그것을 넘어서서 보면 중국선과 일본선 [및 한국선] 공히 대승의 전통 내에 있고, 대승 수행자들은 중생들을 돕기 위해서 좌선하고 수행합니다. 이것이 어떤 차이점보다 더 중요합니다.”

덧붙여 한국선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셨던 숭산 선사께서도 한 제자의 이웃 종교전통에 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똑같은 견해를 피력하셨습니다.

“내가 로스앤젤레스에서 머물 때, 많은 사람들이 조동선曹洞禪과 임제선臨濟禪의 차이에 대해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둘은 같은 것이다.’ 오직 외관만 다를 뿐이다. 조동선은 생각을 끊어 내기 위해서 호흡에 주의를 기울인다. 공안수행은 생각을 끊어 내기 위해 공안을 드는 것이다. 방법만 다를 뿐이다. 생각을 끊어 내고 깨끗한 마음이 되는 것은 똑같다. 그 둘은 같은 방으로 들어가는 두 개의 문인 셈이다. 그렇지만 만일 네가 지관타좌나 공안에 집착한다면 그 두 가지는 다른 게 된다.”

따라서 이제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 한중일 세 나라의 선 수행자들이 오직 자기 스승과 내 수행법만이 최고라고 외치며 우열논쟁에 에너지를 낭비할 것이 아니라, 활발한 교류를 통해 서로의 장점들을 적극 수용한다면 지구촌 곳곳에서 선풍禪風이 크게 일어나리라 확신합니다. 또한 이렇게 될 때 21세기 무한 경쟁 시대를 살면서 고통 받고 있는 현대인들이 보다 쉽게 자각하며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소중한 인생을 지속적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군더더기: 비단 선 수행의 세계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종교 간에 우열優劣이란 있을 수 없으니 다투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뿐만이 아니라 교통수단의 발달로 지구촌이 물리적으로 하루 생활권이 되면서 다문화 다종교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보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내는 물론이고 지구촌 도처에서 크고 작은 종교분쟁들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을 세밀히 살펴보면 간단합니다. 바로 내 종교만이 바른 종교라는 편견 때문입니다. 사실 정말 지혜로운 영적 스승이라면 그 누구의 신앙도 흔들려 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이 자신의 신앙 안에서 영적으로 향상向上할 수 있게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 좋은 본보기로 티벳 불교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께서 열열이 환영받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가는 곳마다 강연에서 “저는 당신들을 개종시키려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들로 하여금 여러분들의 신앙 안에서 더욱 깊은 영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적 스승들은 다 똑 같은 것 같습니다. 힌두교의 영적 스승이셨던 라마크리슈나께서도 역시 쉬운 언어로 ‘다투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주셨네요. 함께 성찰을 통해 종교 간의 편견偏見을 타파打破하고자 이 글을 소개드립니다.

“그대가 그대의 신앙을 굳게 믿듯이 다른 사람에게도 스스로의 신앙을 지킬 권리가 있습니다. 말싸움을 한다고 자기 잘못을 (진심에서 우러나와)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신의 자비를 느끼는 순간 사람은 자연스레 스스로의 실수를 깨닫습니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각자 자기 신앙 안에서 내적으로 변화의 체험을 겪으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眼目이 넓어집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 체험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며 부족한 면을 향상向上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다가 궁극적으로는 그 어디에도 걸림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잘 아시다시피 석가세존의 경우 요가 선정 수행을 통해서 부족한 면을 더 이상 향상시킬 수 없음을 깨닫고 길을 바꿔 보리수 아래에서 ‘바른 깨달음[正覺]’에 도달하게 되는 것처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니 종교 간 우열 다툼을 목숨 걸고 할 필요는 없겠지요.

참고로 유사한 관련 명언名言들로는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 1823-1900)의 “하나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릅니다.”라든가 한스 킹(Hans Küng, 1928- 현재)의 “종교 간의 대화 없이 종교 간의 평화 없고, 종교 간의 평화 없이 세계 평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가 있습니다.

끝으로 우리 모두 열린 마음으로 좋은 이웃 수행전통의 장점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있는 그 자리에서 깨어 있으면서 한 눈 팔지 않고 자신의 맡은 바 책무에 온몸을 던진다면, 해가 갈수록 점점 높아져 가고 있는 한국 불교계에 내재된 크고 작은 많은 문제점들이 봄날 눈 녹듯이 해소되리라 판단됩니다. 사실 이럴 경우 굳이 대중공사를 열 필요도 없겠지요!

관련 자료들
금강신문 원문: 수행법에 분별없어야
http://ggb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535

종교 간 우열불이優劣不二: 다투지 마세요
http://www.seondohoe.org/56812

어려운 이웃 앞에서 종교 간의 우열 논쟁 무의미
http://www.seondohoe.org/55954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6년 반 동안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노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노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노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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