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운명
  • 현각 스님
  • 승인 2015.02.1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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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각 스님의 <클릭! 마음의 두드림>- 86.
인류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날씨라고 한다. 춥다, 덥다, 눈이 온다, 비가 온다 등이다. 지구촌 시대에는 여행을 할 때 현지의 날씨를 잘 알아 대처하는 것도 현명한 일일 것이다. 역시 인간의 나약함을 지혜로 대처하고 극복하고자 한다는 것은 사람만이 지닌 슬기로운 대처 방안이라고 위로할만하다.

날씨 못지않게 머리에 각인된 말이 운명이 아닐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운’ 혹은 ‘운명’이란 말의 개념을 잘 알지 못하면서 쓰고 있다. ‘운이 나빠서 별꼴을 당했다’, ‘운명의 장난이었지’라고 중얼거리곤 한다. 운(運)이란 글자는 움직인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운명도 그렇다. 이리저리 빙글빙글 도는 것이어서 돌다가 어디에 부닥친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운명이란 꼭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필연이 아니고,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는 것이 빙글빙글 도는 가운데 어쩌다가 어디에 부닥치는 것이다. 행운이란 말도 쓰는데 운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쪽으로 운행이 되어 마주치게 되는 경우이다. 반면에 그와 반대의 경우에 부닥치면 불행하다고 할 것이고, 이때 바로 팔자 운운하며 속상해 한다. 나는 되는 일이 없다느니, 왜 나에게는 이러한 시련이 닥치느냐고 장탄식을 늘어놓기 일쑤이다.

영어의 운명이란 말 가운데 하나인 ‘lot’가 있다. 제비뽑기나 추첨이란 뜻이 있다. 이렇게 보면 동서양 사람들의 생각이 공통된 듯하다. 복권을 ‘lottery’라고 하는데 운이란 말을 동반하고 있다. 복권에 당첨된다는 것이 손재주와는 무관한 일이다. 또한 장소와도 무관하다고 본다. 어느 장소에는 몇 등 몇 등 당첨된 곳이라고 쓰여 있기도 하지만 그곳에 그 등수로 붙박이가 될 수 없는 일이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많은 돈을 받아서 유용하게 쓰고 복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이전에 큰돈을 써보지 못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일으켜 주변을 어지럽게 하고 자신의 삶의 리듬을 잃고 만다. 재화의 화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많다.

운용지묘존호일심(運用之妙存乎一心)이란 말이 생각난다. 이 말은 ‘법칙이나 기계, 또는 사람을 잘 부려서, 미묘한 효과를 거두는 것은 오직 마음 하나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마음의 작용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반증하는 말이다. 어느 사람이 힘이 넘쳐 바위 덩이를 움직일 수 있다하여 옮기고 나면 다음 단계의 일에는 힘이 미치지 못한다. 힘만 믿고 온힘을 소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렛대의 힘을 빌리면 별 힘을 들이지 않고도 일의 능률을 올릴 수 있다. 마음의 작용은 지렛대의 원리와 흡사하다.

팔자타령 소리를 듣는다. 그 타령에는 음치가 없는 것 같다. 한결같이 한숨이 따른다. 그리고 사설이 따른다. 시대를 원망하고 상대를 원망하는 내용이 일색이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말은 좀체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 그때 그 언동은 전적으로 자신의 판단이 글렀던 것이라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타령은 길어질 밖에 없다. 심지어 소금엣밥을 놓고도 팔자소관이라고 하니 팔자는 만사에 해당되는 말인 듯하다. 그러나 운명은 자신이 개척해 가는 과정에서 강이고 나무이고 바위일 뿐이다.

굽이쳐 흐르는 강은 바로 그곳을 지나면 넓은 폭이 나온다. 울창한 나무나 천애의 바윗길을 지나면 또한 평지가 나온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연과 필연 사이에서 곡예를 하고 있는 것이 세상살이가 아닐까 한다. 우연에 비탄하고 필연에 환희할 만한 일도 아니다. 어쩌면 이 둘은 항상 공존 공생의 속성을 지니고 있을 테니까.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고 윤극영 선생은 노래했다.

하(夏)나라에서는 음력 정월이 하나라의 정월이었다. 은(殷)나라는 섣달이고, 주(周)나라는 동짓달이 정월이었다. 섣달은 설달[正月]의 음전(音轉)이므로 우리 민족도 고대에는 은나라와 같은 역법을 썼던 모양이다.
옛날에는 작은설을 ‘아찬설’이라고 했는데, ‘아찬’이란 ‘작은’이란 뜻이다. 이 말이 ‘아치설’로 변해 작은설을 ‘아치설’이라 불렀다. 아치는 ‘작은(小)’의 뜻을 지니던 말이었으나 그 사실을 잊고 아치와 음이 비슷한 ‘까치’로 엉뚱하게 바뀌게 되었다.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였기 때문에 ‘까치설날’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차례(茶禮)는 세소토어(sesotho)로 ‘용서’의 뜻이므로 조상에게 용서를 비는 의식이다. 뿐만 아니라 세배(歲拜)는 ‘의무’나 ‘일’의 뜻이니, 친교의 예절로서 정초의 인사를 의미한다.

그동안 잘못된 일을 조상 탓으로 돌린 사람들은 조상님께 용서를 비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매끄럽지 못한 대인 관계가 있었다면 정초 인사부터 꼭 챙기는 새해 벽두가 되길 바란다. 운명은 항상 자신의 몫이니까.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 수행정진했고, 동국대학교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센터 초청교수, 동국대 불교대학장, 정각원장, 한국선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겸 동국역경원장으로 불교학계 발전과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선학의 이해』, 『선어록 산책』, 『선문선답』, 『선문보장록』, 『선 사상론』, 『선 수행론』, 『한국선론』, 『벽암록의 세계』, 『한국을 빛 낸 선사들』, 『선심으로 보는 세상』 연보로 구성된 『최현각 선학전집』(전11권), 『내 사유의 속살들』, 『현각스님의 마음 두드림』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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