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잊어 빚은 평화
군대를 잊어 빚은 평화
  • 변택주
  • 승인 2015.03.0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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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변택주의 <섬기는 리더가 여는 보살피아드>-108. 호세 피게레스

지난 3월 4일(현지시간) 빈센트 브룩스 미국 태평양지역 육군사령관은 4일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사드(THAAD·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해외 배치를 결정하지 않았다”면서도 “한국과 중동은 매우 급히 쓰임새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 브룩스 사령관은 “두 곳은 장거리미사일을 쏠 힘과 뜻을 갖춘 적대국들이 있어 사드를 하루빨리 배치하지 않으면 안 되는 데”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얘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30일 로버트 워크 미국 국방부 부장관은 “미국이 사드 요격미사일 포대 한국 배치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에 미사일 배치를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이 하는 까닭은 전시 작전통제권을 미국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내 나라가 내 나라 사람이 죽어나갈 전장이 될 수도 있는 미사일 배치를 다른 나라 군인에게 들어야 하다니. 더 나아가 우리는 우리 목숨을 쥐락펴락할 힘을 외국 사람에게 맡겨놓고 돌려받을 때가 됐는데도 더 맡아달라고 애걸을 하고 있다.

6·25전쟁 초기 1950년 7월 14일자로 이승만 대통령은 작전지휘를 한군데로 모아야 한다며, 유엔군사령관에게 우리 군 작전통제권을 통째로 넘겼다. 그 뒤 1953년 10월 1일 맺은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1954년 11월 17일 합의한 ‘합의의사록’에도 모양새가 그대로 이어졌다. 1994년 12월 1일부터 평시작전통제권을 한국 합동참모의장이 넘겨받았으나 전시작전통제권만이 연합군사령관이 쥐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도 2015년 12월 1일 넘겨받을 계획이었으나, 2014년 10월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ㆍ미 양국 간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을 때는 한반도 안보상황이 나아지고 한국군이 대북 억지능력을 알맞다고 여겨질 때여야 한다면서 세 가지 조건을 평가해 넘겨받는 때를 결정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했다.

우리는 뒤 세대들에게 화약고를 물려줄 수밖에 없는 못난 조상이 되어야만 하는가. 여기 군대를 잊고 무기를 만들 돈으로 의료 시설을 하고 교육에 투자하고 복지를 갖춘 평화로운 나라가 있다. 코스타리카. 군대가 없는 코스타리카는 중남미에서 가장 평화로운 영세중립국으로 ‘중미 스위스’라 불린다. 

병영을 박물관으로 바꾸자
코스타리카는 1821년 독립을 하고 나서 내전과 쿠데타로 불안정했다. 1882년에서 1938년 사이 50여 년 동안 반란이 스물 한 차례나 일어나 거의 이태에 한 번꼴로 반란이 일어났으니 혼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948년 대통령 선거는 집권 국민공화당 후보 칼데론과 야당 국민통합당 후보 울라테가 맞붙어 중산층 지지를 받은 야당후보 오틸리오 울라테가 아주 적은 표 차이로 이기자, 여당이 결과에 이의를 들고 나왔고 국회는 여당이 잠정 다스리도록 했다. 야당은 들고 일어났고, 사회는 혼란스러웠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기존 정권을 비판하며 민병대를 조직해 둔 커다란 농장주 호세 피게레스(1906-1990)가 들고 일어나 정부군과 맞선다. 1948년 3월 12일부터 5주간 벌어진 내전은 2천 여 명 사망자를 내고 피게레스 이기면서 막을 내린다.

임시정부 수반에 오른 피게레스는 놀라운 개혁을 한다. 5만 콜론이 넘는 자본에 세금 10퍼센트를 매기고 은행을 국유화했다. 국영 전력회사를 세우고, 바나나와 커피를 독점하던 미국계 다국적기업에 중과세를 매겼다. 그리고는 여섯 달이 지난 1948년 12월 1일 “병영을 박물관으로 바꾸자”며 군대를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뜻밖이었다. 힘으로 정권을 잡은 이로서는 자칫 제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선택. 내전으로 지치고 삶이 버거웠던 나라사람들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급기야 1949년 군대를 없애 군부가 정치에 끼어들 겨를을 막았다. 이 나라 평화헌법 12조는 이렇다. “언제나 이어지는 기관으로서 군대는 없앤다. 단속과 치안은 경찰이 맡는다. 대륙 협정과 나라방위를 해야 할 때만 군사력을 모을 수 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늘 문민이 힘을 가지며, 개인 또는 집단으로 성명 발표나 선언을 할 수 없다.” 1949년 11월 7일 “군대를 가질 수 없다”고 적바림한 새 헌법이 펼쳐졌다. 호세 페게레스 부인 카렌 올센 데 페게레스는 그 까닭을 이렇게 밝힌다. “나라를 일으키려고 자원을 교육과 복지, 의료에 먼저 써야 해서 군비를 댈 돈이 없었다.” 군대를 없앤 피게레스는 처음 공약대로 짧은 집권을 끝내고 울라테에게 정권을 내어준 뒤 물러선다.

피게레스가 군대를 없앤 까닭을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코스타리카는 19세기 전반에 스페인, 멕시코, 그리고 과테말라가 이끈 중미연방에서 독립을 했다. 그때 군대가 얼마큼 구실을 했다. 그러나 그 뒤로 오래도록 충돌이나 내전을 겪지 않았다. 또한 넉넉한 독립 자영농들이 있어 중앙집권 관료제와 상비군 발전이 뒤졌다. 게다가 20세기 초 티노코 군부독재에 나라사람 반감이 심했고 1921년 파나마전쟁에서 진 뒤에 군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다. 군대를 없애도 반발할 기득권 세력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교육을 맡았던 대다수 여교사들이 평화, 공존 가치를 학생들에게 심어줬다.

코스타리카가 군대를 없앤 그날, 남한에서는 국가보안법이 제정했다. 군대 없애기가 인권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겉으로 드러나는 상비군만 없앤 것이 아니라 군과 관련된 모든 활동이 막 내림을 뜻한다. 방위·군수 산업, 군산 연구개발, 무기체계에 끊임없는 업그레이드와 투자, 나라사람을 군으로 불러내는 시스템이 사라진 것이다. 따라서 군사 수단이 아닌 비군사 방식으로 안보 개념을 떠올리고 살아내야 한다. 군대가 없으므로 안보와 평화를 군사문화에서 벗어나 중립이라는 지렛대와 이어 놓았다. 정의로움을 앞세운 이미지를 빚어내 줏대를 세운 외교 노력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이렇게 얻은 이로움 가운데 ‘평화배당금’ 효과가 가장 크다. 군비를 교육, 보건의료, 환경, 문화에 돌릴 수 있으므로 사람개발지수가 올라간다. 코스타리카 노동자 숙련도와 생산성이 라틴아메리카 으뜸인 까닭도 여기 있다. 21세기 들어 새로이 눈길을 끄는 행복지수에서도 윗자리에 오른 까닭도 여기서 나온다. 살아남으려면 더욱 인권과 평화 빛깔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인연이 빚어진 것이다.

코스타리카는 그 뒤로 이제까지 내전 한 번, 침략 두 번, 이웃나라에서 일어난 불똥 튀기 한 번으로 모두 네 차례 ‘사변’을 겪는다. 그때마다 한결같이 ‘어느 쪽에도 붙지 않는다’는 줏대 외교로 벗어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전쟁 코앞까지 이른 적도 있다. 그래서 1983년 <적극 비무장 영구 중립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 선언에는 적극 나서서 1. 비무장- 군대를 갖지 않는다. 2. 영세- 언제까지나 3. 중립- 누군가와 또 다른 누군가가 다툴 때 누구 편도 들지 않는다. 4. 선언- 대통령이 이웃나라에 두루 뜻을 알린다. 알짬은 ‘적극 나서’는 데 있다. 이웃끼리 다툴 때 어느 편도 들지 않지만, 그 사이를 평화롭게 만들려고 있는 힘을 다 쏟겠다는 말이다. 이 밑절미에 평화 줏대가 오롯하다. 1986년 대통령에 오른 오스카르 아리아스 산체스는 군대 없애겠다고 선언한 피게레스 부인 카렌 올센에게 니카라과,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중앙아메리카 세 나라에서 내전을 끝낼 수 있도록 나서달라고 했다. 이에 힘입어 1987년 중앙아메리카 평화협정이 맺어진다. 싸움을 뜯어 말릴 때 비무장이 절대 믿음을 살 수 있었다.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 미국이 겉으로라도 내세운 가치관을 거꾸로 힘주어 드러낸 것도 미국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열쇠였다.

사람 말은 믿을 수 있다고 알려준 살림꾼
호세 피게레스는 1906년 9월 25일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Cataluña에서 이민 온 의사와 교사인 아내 사이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8년에 Tarrazú에 있는 국유지 농장을 샀다. 농장 경영에 수완을 보인 피게레스는 1,000여 명이 넘는 소작인과 공장 노동자를 고용해 커피를 재배하고 로프를 만들어 성공을 거뒀다. 피게레스는 함께 일하는 소작인들이나 노동자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의료 복지를 비롯해 때맞춰 휴가를 주고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자녀들에게 무료로 우유를 비롯한 유제품을 나누는 복지를 일찌감치 시작했다.

1948년 쿠데타로 집권한 피게레스는 약속한 대로 1년 6개월이 되지 않아 물러났다. 믿을 신信, 사람 말은 믿을 수 있다고 알려준 살림꾼이다. 1953년에 재집권한 피게레스는 반독재 기치를 들었다. 또한 주산업이던 바나나 산업에서 나라 이익 배당률을 10퍼센트에서 30퍼센트로 늘리고 58년 퇴임했으나, 나라사람들 성원에 힘입어 1970년부터 1974년까지 한 차례 더 집권한다.

중남미, 특히 둘레 니카라과, 에콰도르, 과테말라 같은 나라들은 쿠데타와 군사독재, 내전과 학살에 시달렸다. 그렇지만 코스타리카는 군대를 없애 중남미 ‘예외국’으로 정치 안정을 가져왔다. 니카라과와 2011년 국경분쟁을 겪으며 고비도 겪었지만 비무장 원칙은 지켜졌다.

대립과 분쟁을 피하려는 국민성도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배경으로 꼽힌다. 소외된 식민지였다는 역사도 놓쳐서는 안 된다. 코스타리카는 희귀 광물도 없고 노동력으로 쓸 원주민도 많지 않아 매력 있는 식민지가 아니었다. 스페인 왕권 관심 밖이라 식민지 지배 권력이 취약했다. 이 덕에 독립하고 나서 넓은 땅을 가진 경제 엘리트와 정치 엘리트 결탁과 이에 따른 정치 불안도 없었다. 경작할 곳이 넉넉하고 노동력은 많지 않으니 커피 재배를 바탕으로 중소 자산계급이 자랐다. 1943년에 사회보장제도가 마련되고 노동법이 섰다. 군대를 없앤 1949년 새 헌법은 여성과 흑인에게 참정권을 주고 독립된 선관위도 세웠으며, 모든 공직자 연임도 막았다. 

밑절미가 된 영세중립국 선언도 터무니와 함께 주어진 지리 조건에서 나왔다. 미국은 코스타리카 북쪽 니카라과에 1979년 산디니스타 혁명정부가 세워지자, 이를 무너뜨리려고 ‘콘트라’ 조직을 지원하면서 군사기지 건설을 요구하자, 코스타리카는 1983년 국제분쟁에 끼어들지 않는 영세중립국을 선언해 미국 압력에서 벗어났다. 코스타리카인들은 말한다. “군대를 가지고 있다 보면 서로 자꾸 의심하게 되어 군대가 전쟁 억제력이 아니라 외려 전쟁 위험성을 높인다. 그러므로 군대를 갖지 않는 것이 바로 최대 방위력이다.” 이 바탕 때문에 유엔평화대학 본부가 코스타리카에 있다.

대통령도 법정에 세운다 
군대를 없애려는 놀라운 생각은 사회 곳곳에서 커다란 힘을 낸다. 코스타리카 교도소는 콘크리트 담이 없다. 도망가려는 마음만 있으면 언제라도 튈 수 있다. 수감자들은 죄수복을 입지 않고 일상복을 입는다. 공중전화가 있어 바깥사람들과 자유로이 통화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랑방’이다. 수감자들은 2주일에 한 번 아내와 애인을 만나 이 방에서 사랑을 나눈다. 천국과 같은 교도소. 왜 이리 대우가 좋을까. 카르타고에 있는 교도소장은 말한다. “인권이란 것이 무엇일까, 특히 자신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가, 수감자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려는 데서 옵니다.” 우리나라 형사 사범 재범률은 50퍼센트에 가까운데, 코스타리카는 재범률이 2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코스타리카에는 가정, 민사, 형사 사건을 다루는 법정 말고도 법정이 하나 더 있다. 제4법정, 이른바 헌법 소법정이다. 이 법정은 코스타리카에서 인권 구제 시작이자 마지막 보루다. 제4법정은 헌법에는 낱낱이 나와 있지 않은 특히 인권 문제 따위로 제소할 수 있다. 이 법정은 원고가 적격하냐를 묻지 않는다. 어린이든 외국 사람이든 누구라도 제소할 수 있다. 실제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가 제소해 승소를 한 적도 있다.

이 법정에서 아주 이름난 판결이 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에 전쟁을 시작했을 때, 코스타리카는 미국에 ‘윤리 지지’를 했다. 미국은 ‘뜻을 같이하는 연합국 리스트’를 발표했는데, 33개나라 가운데 코스타리카가 있었다. 나라사람들은 격분했고, 대학생 로베르토 사모라가 대통령을 제4법정에 제소했다. 판사 일곱 사람이 모두 위헌 판결을 내린다. 헌법 이념인 전쟁금지 위반, 국제연합 헌장에 위배, 인권을 침해라는 것이 그 까닭이었다.

인구는 469만 명, 1인당 국민소득(GDP)은 1만528달러(2013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코스타리카에서는 의료를 받은 어떤 사람에게도 돈을 받지 않는다. 코스타리카 의료제도는 국민보험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며 노동자와 고용주가 내는 보험료와 세금으로 돼있다. 그렇지만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도 국립병원이 받아준다. 심지어 코스타리카에서 법적 체류 자격이 없는 사람도 받아 준다. 목숨에 무겁고 가벼움이 없고, 기본 인권은 보편성을 띠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코스타리카는 영국 신경제재단 행복지수 조사에서 2009년과 2012년 1위에 올랐다. 143개국을 대상으로 삶 만족도, 기대수명, 탄소지수 따위 정신과 물질 넉넉함을 반영한 지수다.

코스타리카에서 나는 도타 커피는 세계 최초 탄소중립 커피다. 생산과 운송, 판매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인 제품으로, 2010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탄소중립 인증 받았다. 전력생산 91퍼센트가 재생에너지(수력 73퍼센트, 지열 13퍼센트, 풍력 4퍼센트)다. 2004년 석유를 발견했지만 개발하지 않고 있으며 집을 지을 때, 집 높이가 나무보다 높으면 안 되는 곳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군대가 없으면 국가 안보를 어떻게 지키는가라고 묻는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되묻는다. “군대가 있다면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가?” 지난해 12월 1일 코스타리카에서는 솔리스 대통령과 함께 ‘군대 없앤 날’ 행사가 열렸다. 예순 여섯 해째였다. 1948년 12월1일, 호세 피게레스 대통령이 수도 산호세 군사령부 벨라비스타 요새 벽면을 망치로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제는 국립박물관이 된 그 자리엔 기념 동판이 붙어 있다. “온 나라 병영은 학교로 바뀌었다.”

집집마다 지지하는 정당 깃발을 꼽고 사는 나라, 선거 때마다 아이들도 똑같은 후보자들을 놓고 모의투표를 하게 하면서 참정권을 일깨워주는 나라 코스타리카에서는 초등학생들조차도 “평화가 뭐니?” 물으면 망설이지 않고 “민주주의, 인권, 환경이죠.”라고 튀어나온다. 삶이 그대로 평화롭게 하려고 애쓰는 나라 코스타리카처럼 우리나라를 빚을 수는 없을까? 예순 살이 넘어 늙은이 반열에 오른 이들은 ‘평화로운 나라로 만들지 못하고 못난 조상으로 눈 감을 수는 없다!’고 외치고 나서야 한다.

나는 ‘사드THAAD’ 우리나라 배치를 반대한다!

   
인문학 강의를 하는 경영코치, ‘연구소통’ 소장으로 소통을 연구하며, 지금즉市 트區 들으面 열리里 웃길 79에 산다. 펴낸 책으로는 <법정스님 숨결>과 <법정, 나를 물들이다>, <가슴이 부르는 만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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