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중동에서 일어날 법한 폭력이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발생하였습니다. 미국을 대표해서 파견된 최고위 외교관이 적대국이 아닌 우방국 시민에게서 피습을 당한 것입니다. 위험한 상황을 가까스로 모면했다 하니 그만하기 다행입니다.
박대통령은 이 사건을 “백주대낮 테러”라고 명명했습니다. 귀에 익은 말이라 했는데 혼란이 극심했던 해방정국에 만연했던 테러들을 우리는 흔히 그렇게 불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 12월에 한 강연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던 사제폭탄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요즘엔 애인의 변심에 또 돈 때문에 가족을 살해하는 등, ‘증오형’ 범죄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목전의 선진국 진입을 자랑하던 때가 엊그제인데, 어쩌다 분노와 폭력의 과거로 회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이 미국대사 테러에 대해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라는 요지로 공식입장을 발표했다고 들었습니다. 자본의 갑질에 서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희망 없는 젊은이들이 파리한 얼굴로 거리를 떠돌고, 일가족이 벼랑에 몰려 죽음을 선택해도 못 본 척 하더니, 강대국 외교사절의 위해(危害)에는 그토록 신속히 반응을 하니 좀 의아하기는 했지만 뜻은 충분이 공감이 가는 바입니다. 맞습니다. 폭력은 여하한 경우에도 있어서는 안 될 야만 행위가 맞습니다. 그런데 종단의 비행을 보도하는 언론사 사장을, 그리고 범계를 규탄하는 스님을 무차별 폭행한 전력이 있는 조계종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리 오탁악세의 시대라 하더라도 수행자는 허언(虛言)을 말아야 합니다.
진실의 목소리를 들려주십시오. 원장님께서 일전에 직접 고백하셨습니다. "출가해 절 뺏으러 다니고, 종단정치 하느라 중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라고 했고, “지난 50년 동안 불교가 사회를 위해 기여한 게 하나도 없다"라고도 했습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불법선거를 뭉개고 있는 것에 비하면, 그나마 수행자다운 성찰이 묻어나는 고백이라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총무원장은 뭇 중생들의 어른이 되어야 할 성직자입니다. 백척간두 진일보라 했습니다. 고백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십시오.
조계종은 이 시대의 혼란과 불행을 공업(共業 공동의 업보)이라며 눙치려하고 있습니다. 4.16 세월호 참사에서부터 생계형자살에 이르기까지, 수행자라면 중생들의 목불인견 고통에 귀 기울여 성찰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고통을 호소하고 불법을 고발하면, 권력자는 귀를 막고 가해자가 큰소리치는 적반하장의 이 기이한 나라에서 중생 마음 둘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절이라고 찾아가보지만 사찰은 이미 종단 권력투쟁과 돈 놀음 장으로, 힘없는 이들을 지나가는 개 쳐다보듯 하는 곳으로 변한지 오래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폭력들은, 의지해 하소연할 데 없는 중생들의 상처 입은 마음의 일단일 것입니다.
‘십자가를 짊’은 성직자의 운명이고 ‘중생의 아픔을 짊’은 수행자의 운명입니다. 잘못된 시대를 탓하고 관행이었다고 변명하는 것은 세속 범부들이나 하는 행동입니다. 최근 비리와 불법으로 큰 절 권승들의 이름이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는 것도 모자라, 불학(佛學) 100년 전통의 동국대 총장 자리조차 지난 번 총무원장 선거 전리품으로 전락해 표절로 얼룩진 스님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청정해야할 수행처가 더 더럽혀지기 전에 그들과 함께 결단하십시오.
한국사회 불행의 상당부분은 지도자들이 잘못을 덮고 비리를 서로 눈감아 주는 관행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처염상정(處染常淨),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어올린다고 했습니다. 수행자가 먼저 모범을 보이십시오. 고인 물은 더 탁해질 뿐입니다. 민족과 함께 해온 무욕의 불교정신이 되살아나면 민족정신도 되살아나리라 믿습니다. 먼저 청정한 길 가시면, 지도자도 따라갈 것이고 무명의 중생도 그 길 뒤 따라가지 않겠습니까.
하훈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불문학을 공부하고 동국대불교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마쳤다. 국제금융전문가로 활동 중 외교사절, 노벨상 수상자, 해외언론인 등 다양한 해외인사와 교류하면서 남북 분단문제에 관한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현재는 <외교사절과 함께하는 DMZ 평화순례대행진>, <국제평화문학포럼> 등 다양한 행사 개최를 통해 국제사회에 한반도 평화를 호소하고 있다. 대한불교진흥원에서 선정하는 제 7회 대원상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기사제보 mytrea7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