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더럽혀지기 전에…
더 더럽혀지기 전에…
  • 하훈
  • 승인 2015.03.31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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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하훈의 '불교가 희망이다'-2
원장님, 백척간두 진일보라 했습니다

일전에 중동에서 일어날 법한 폭력이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발생하였습니다. 미국을 대표해서 파견된 최고위 외교관이 적대국이 아닌 우방국 시민에게서 피습을 당한 것입니다. 위험한 상황을 가까스로 모면했다 하니 그만하기 다행입니다.

박대통령은 이 사건을 “백주대낮 테러”라고 명명했습니다. 귀에 익은 말이라 했는데 혼란이 극심했던 해방정국에 만연했던 테러들을 우리는 흔히 그렇게 불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 12월에 한 강연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던 사제폭탄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요즘엔 애인의 변심에 또 돈 때문에 가족을 살해하는 등, ‘증오형’ 범죄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목전의 선진국 진입을 자랑하던 때가 엊그제인데, 어쩌다 분노와 폭력의 과거로 회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이 미국대사 테러에 대해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라는 요지로 공식입장을 발표했다고 들었습니다. 자본의 갑질에 서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희망 없는 젊은이들이 파리한 얼굴로 거리를 떠돌고, 일가족이 벼랑에 몰려 죽음을 선택해도 못 본 척 하더니, 강대국 외교사절의 위해(危害)에는 그토록 신속히 반응을 하니 좀 의아하기는 했지만 뜻은 충분이 공감이 가는 바입니다. 맞습니다. 폭력은 여하한 경우에도 있어서는 안 될 야만 행위가 맞습니다. 그런데 종단의 비행을 보도하는 언론사 사장을, 그리고 범계를 규탄하는 스님을 무차별 폭행한 전력이 있는 조계종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리 오탁악세의 시대라 하더라도 수행자는 허언(虛言)을 말아야 합니다.

진실의 목소리를 들려주십시오. 원장님께서 일전에 직접 고백하셨습니다. "출가해 절 뺏으러 다니고, 종단정치 하느라 중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라고 했고, “지난 50년 동안 불교가 사회를 위해 기여한 게 하나도 없다"라고도 했습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불법선거를 뭉개고 있는 것에 비하면, 그나마 수행자다운 성찰이 묻어나는 고백이라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총무원장은 뭇 중생들의 어른이 되어야 할 성직자입니다. 백척간두 진일보라 했습니다. 고백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십시오.

조계종은 이 시대의 혼란과 불행을 공업(共業 공동의 업보)이라며 눙치려하고 있습니다. 4.16 세월호 참사에서부터 생계형자살에 이르기까지, 수행자라면 중생들의 목불인견 고통에 귀 기울여 성찰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고통을 호소하고 불법을 고발하면, 권력자는 귀를 막고 가해자가 큰소리치는 적반하장의 이 기이한 나라에서 중생 마음 둘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절이라고 찾아가보지만 사찰은 이미 종단 권력투쟁과 돈 놀음 장으로, 힘없는 이들을 지나가는 개 쳐다보듯 하는 곳으로 변한지 오래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폭력들은, 의지해 하소연할 데 없는 중생들의 상처 입은 마음의 일단일 것입니다.

‘십자가를 짊’은 성직자의 운명이고 ‘중생의 아픔을 짊’은 수행자의 운명입니다. 잘못된 시대를 탓하고 관행이었다고 변명하는 것은 세속 범부들이나 하는 행동입니다. 최근 비리와 불법으로 큰 절 권승들의 이름이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는 것도 모자라, 불학(佛學) 100년 전통의 동국대 총장 자리조차 지난 번 총무원장 선거 전리품으로 전락해 표절로 얼룩진 스님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청정해야할 수행처가 더 더럽혀지기 전에 그들과 함께 결단하십시오.

한국사회 불행의 상당부분은 지도자들이 잘못을 덮고 비리를 서로 눈감아 주는 관행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처염상정(處染常淨),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어올린다고 했습니다. 수행자가 먼저 모범을 보이십시오. 고인 물은 더 탁해질 뿐입니다. 민족과 함께 해온 무욕의 불교정신이 되살아나면 민족정신도 되살아나리라 믿습니다. 먼저 청정한 길 가시면, 지도자도 따라갈 것이고 무명의 중생도 그 길 뒤 따라가지 않겠습니까.

하훈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불문학을 공부하고 동국대불교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마쳤다. 국제금융전문가로 활동 중 외교사절, 노벨상 수상자, 해외언론인 등 다양한 해외인사와 교류하면서 남북 분단문제에 관한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현재는 <외교사절과 함께하는 DMZ 평화순례대행진>, <국제평화문학포럼> 등 다양한 행사 개최를 통해 국제사회에 한반도 평화를 호소하고 있다. 대한불교진흥원에서 선정하는 제 7회 대원상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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