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깨어나 울다
꿈에서 깨어나 울다
  • 고원영
  • 승인 2015.04.0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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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고원영의 ‘저절로 가는 길’-5. 쌍계사 가는 길

▲ 벚꽃이 흐드러진 화개십리길

벚꽃이 눈부시다. 너무 눈부셔 눈을 감았는데도 내리는 벚꽃의 그림자가 눈꺼풀 너머에서 아른거린다. 눈을 뜨면 자칫 망막이 베일 것 같아 장님처럼 흰빛 속을 더듬어 간다.

벚꽃이 피고 지는 봄날, 쌍계사雙磎寺 가는 길은 한 걸음만 걸어도 현기증 나는 절벽이다. 사람들은 절벽 아래 흰빛의 계곡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걷는다.

화개花開는 꽃이 핀다는 뜻이다. 비슷하지만 더 많이 쓰는 개화開花란 말이 있다. 그럴 리 있겠느냐만 경상남도 하동은 꽃이 잎보다 먼저 핀대서 화계란다. 꽃보다 잎이 먼저 피는 것이 정설이고, 세상 어디서나 늘 피고 지는 것이 꽃이거늘 왜 하동만 화계일까. 벚꽃 때문이다. 어느 날 하늘에서 와르르 쏟아지듯 벚꽃이 나타났다가 씻은 듯 사라지니 오직 벚꽃만을 기억할 뿐, 검은 나뭇가지와 푸른 잎은 금세 잊혀지고 마는 것이다. 특히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시오리 길은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멀미가 나도록 벚꽃이 피고 진다.

▲ 화개천에 나뭇가지를 드리운 벚나무
▲ 꽃이 흔들린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 어디 있느냐고 누가 말했나.

내가 도착한 날도 화개천을 따라 꽈리를 뜬 뱀처럼 이어진 길에 벚꽃이 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잔잔한 날인데도 추락을 멈추지 않았다. 벚꽃이 내리고 또 내려 길 양쪽의 산비탈, 동네의 집들과 담장 위, 노점상이 내놓은 좌판에 포개지고 있었다. 이처럼 왕창왕창 꽃이 지는데도 나무들마다 기름진 꽃들이 새로 피어난 듯 꽉 들어차 있었다. 며칠 후면 이 시오리 길이 바니타스 풍의 그림으로 변신할 텐데도 죽음의 불가피성과 속세의 덧없음을 애써 부인하다니. 그렇다면 내 눈에 비치는 이 길은 모두 거짓 풍경인가? 있어야 할 건 있고, 없을 건 없다는 조영남의 노래도 순전히 거짓말인가?

벚나무 아래서 노점상과 상춘객이 주고받았다.
“이거 얼맙니꺼?”
“아따, 말만 잘하모 공짜로도 드리지예.”

말만 번지르르하지 상춘객을 쳐다보는 눈빛이 번득였다. 천막을 치고 음식을 파는 간이음식점의 차림판에는 가격이 적혀 있지 않았다. 흥정 뒤끝에 벌이는 말다툼 소리가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주현미의 낭창낭창한 노랫가락에 섞여 불협화음을 냈다.

벚꽃은 이곳 노점상을 유랑 인생으로 바꾸어놓는다. 벚꽃이 다 지고 거리가 텅 비면 천막 뒤에 세워둔 1톤짜리 트럭을 타고 타처로 흩어질 것이다.

 심심풀이로 뻥튀기를 사서 뜯어먹으며 쌍계사를 향해 걷는데 머릿짐을 이고 타박타박 벚꽃비를 맞으며 걸어오는 아낙이 보인다. 작년 가을 저 세상에 돌아가신 울 어머니, 벌써 이 세상에 돌아오셨나?


화개의 십리벚꽃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벚꽃길이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신작로가 생기면서 지역 유지들이 벚나무 1,200그루를 심은 데서 이름이 생겼다. 왜 하필 일본 국화인 벚꽃이었을까 궁금하다면 벚나무를 따라 굽이굽이 흐르는 화개천에 물을 일이다. 화개천은 섬진강으로 흐르고, 섬진강은 화개장터를 비롯하여 지리산 골짜기에 스민 역사와 애환을 모아 남해로 흘려보낸다.

벚꽃길이 거의 끝나가는 곳에서 다리를 건넜다. 사하촌인 음식점 상가를 지나니 두 개의 큰 바위가 문처럼 나타난다. 최치원이 지팡이를 휘둘러 썼다는 쌍계雙溪와 석문石門이 양쪽 바위에 새겨 있다. 최치원의 글씨는 쌍계사 안에도 있는데, 중창자 진감선사를 기린 진감선사대공탑비가 그것이다.

▲ 최치원의 글씨가 새겨진 진감선사대공탑비.

일주문에 이르니 스님 몇 분이 사다리를 타거나 밑에서 붙들어 ‘금란방禁亂榜’이라는 현수막을 걸고 있었다. 스님한테 그 뜻을 물었다.

“매년 이즘이면 보살계를 거행합니다. 우리 쌍계사에선 초파일 못지않은 큰 행사지요.”

호계도량 쌍계사에서 보살계를 받는 날이면 그 어느 때보다 계행이 청정해야 하므로 금란방을 써 붙여 일주문에 잡귀가 드나드는 것을 방지한다는 게 스님의 전언이었다.

꽃이 흐드러지기는 일주문 안도 마찬가지였다. 금강문이나 천왕문으로 오르는 계단에도, 팔영루와 대웅전 기와지붕 위에도 꽃잎이 쌓여 있었고, 그 위로 계속해서 꽃잎이 날아들었다. 대웅전을 돌아내려 오는 담에는 아예 사시장철 피어 있으라고 진흙꽃을 새겨 넣었고, 불일폭포 가는 길에 앉아 있는 금당의 편액에는 세계일화조종육엽世界一花祖宗六葉, 추사의 글씨가 꽃말을 전하고 있었다. 벚꽃 일색인 문밖과 달리 동백꽃, 산수유꽃, 목련꽃, 매화꽃…… 이 꽃 저 꽃이 흐드러졌다. 하긴 눈 내린 계곡, 칡꽃이 핀 자리가 쌍계사 아니더냐.

▲ 호계도량 쌍계사에서 보살계를 받는 날이면 그 어느 때보다 계행이 청정해야 하므로 금란방을 써 붙여 일주문에 잡귀가 드나드는 것을 방지한다는 게 스님의 전언이었다.

쌍계사 금당은 혜능조사의 두개골을 모신 특이한 전각인데, 바깥에 있어야 할 탑을 전각 안에 모신 것도 특이하다.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이 그것인데, 혜능을 흠모한 신라 스님 삼법三法의 이야기가 어려 있다.

혜능을 친견하는 것이 꿈이었던 스님은 입적 소식을 듣고 통탄한다. 문제는 혜능의 슬픔이 다분히 엽기적인 데 있었다. 혜능의 유골, 그 가운데 두개골을 다른 사람에게 뺏길지도 모른다고 생각에 더 슬퍼했던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혜능의 두개골은 신라로 가져와야 했다. 삼법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육조단경’을 읽다가 ‘내가 입적하고 5,6년 후 동토에서 내 머리를 베어 가는 자가 있을 것’이라는 대목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삼법은 그 길로 당대의 권력자 김유신의 부인에게 달려가 당나라 체류비 2만 금을 얻어낸다. 

삼법이 배를 타고 당나라로 들어간 것은 722년, 우리 불교역사에 최고의 기행이 벌어졌다. 마침내 소주 보림사 육조탑에서 혜능의 두개골을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돌함에 봉안된 혜능의 두개골은 눈 내리는 지리산 계곡, 칡꽃이 핀 자리에 묻힌다. 삼법은 그 자리에 화개난야花開蘭若라는 암자를 지어 수행한다. 쌍계사의 중창자 진감국사 혜소는 삼법이 죽고 화개난야가 화재로 소실된 자리에 육조영당을 세우고, 육조영당은 금당으로 이름이 바뀐다.


혜소가 주석했던 국사암으로 가는 길에서 나는 문득 쌍계사에 선승들이 와서 용맹정진하는 까닭이 꽃의 힘 아닐까 생각했다. 운수납자들이 설마하니 색이나 향에 유인당했을 리는 없다. 그보다는 꽃이 지닌 본래의 의미에 이끌려 쌍계사에 걸망을 내려놓는다고 봐야 한다. 쌍계사에서 우리나라 절에서 가장 수행이 잘된다는 안거처이다.   

운수행각의 도반이었던 경허와 만공도 꽃을 깨달음의 화두로 삼았다. 어느 봄날, 제자인 만공이 경허에게 도란 무엇인지 물었다. 경허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도란 꽃처럼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지. 천지사방에 널린 꽃이 도다.”
“천지사방에 도 아닌 게 없다고요?”
“그래, 꽃피는 것도 도고, 꽃이 지는 것도 도다. 그 오묘한 도리를 알면 부처를 볼 것이니라.”

▲ 쌍계사 금당은 혜능조사의 두개골을 모신 특이한 전각이다.

국사암 수각에도 꽃들이 들이쳤다. 돌거북의 입에서 떨어지는 약숫물의 파장에 꽃들이 돌확 가장자리에서 둥둥 떠다닌다. 그 모습에서 불일폭포 아래서 범패를 익히는 선승들이 보였다. 그 옛날 제자들에게 범패를 가르쳤다는 혜소의 목소리가 은은하고도 유장하게 들려왔다.

스님 두 분이 문수전 계단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스님들이 꽃처럼 보였고 꽃들이 스님처럼 보였다. 출가자가 수행하는 것은 한 송이 꽃이 되기 위해서 아닌가. 산수유가 먼저 깨달음을 얻었는지 두 스님이 내려오는 계단 한 쪽에 산수유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젊었을 때 나는 중이 되어 꽃을 피워보고 싶었다. 꽃은 피워보지 못했고 쌍계사에 가서 무진장 핀 꽃만 본 셈이었다. 일주문을 나서는데 왠지 서러웠다. 어떤 어린아이는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으앙, 소리 내어 운다. 그 아이처럼 울고 싶었으나 울음은 속절없이 목울대 안에 삼켜졌다.

▲ 혜능조사의 두개골을 모신 육조정상탑.
▲ 국사암 수각

걷는길 : 화개 터미널 – 십리벚꽃길 - 쌍계석문바위 – 쌍계사 –불일폭포 - 국사암
거리와시간: 7km 정도, 2시간 30분 예상

   
고원영 산악인이며 여행가. 스페인의 산티아고길과 달리 우리나라는 국토 전체가 성지순례길임을 통찰하여 108개의 불교 성지순례길을 개척하고자 답사 중이며, 36개의 길을 완료하고 ‘저절로 가는 길’이란 제목으로 집필. ‘걸어서 절에 가면 몸뿐 아니라 정신이 운동한다’고 주장하며 때때로 대중을 규합한다. 현재 조계종산악회와 서울불교산악회를 이끌고 있으며, 2010년 ‘나뭇잎 병사’라는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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