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 속에서 되살아난 천년 목불
잿더미 속에서 되살아난 천년 목불
  • 우희종 서울대 교수
  • 승인 2015.05.03 10: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 동국대 총장선출에 부쳐- 절 뺏기와 학교 뺏기

최근 동국대학교 교정에 이미 1,000년도 전에 불태운 목불이 다시 나타났고, 황금 바루와 비단 가사로 치장한 21세기 승려가 근엄하고 아름답게 등장했다. 승려들은 이를 위해 목소리 높여 석가모니불을 외치며 정근을 했고, 하늘 역시 어인 일인지 양일 모두 비를 내려, 동국대에서는 하늘도 축복해서 꽃비를 내린다고 경축했다.

불행히도 땅에 있는 힘없는 자들은 그 목불을 향해 석가모니불을 외치는 자들에게 우상숭배라 일컬었고, 장엄하고도 근엄한 승려의 화려한 등장을 보면서 비탄에 빠진 동국대 학생들의 눈에는 하늘의 슬픈 빗물과 뒤섞인 눈물이 흘러 내렸다.

최근 총무원 지도부가 ‘스님 총장’이란 명분으로 대학의 민주 절차에 의해 진행되던 동국대 총장 선거에 개입해 가장 유력한 후보를 사퇴시켰고, 그 결과 최종적으로 단독 입후보하게 된 동국대 불교대학 교수인 스님 총장후보는 우려곡절 끝에 동국대 차기 총장으로 이사회에서 선출되었다.

이번에 총장으로 선출된 교수 스님은 선출과정에서 표절이 밝혀지면서 재빠르게 해당 논문을 철회했다. 그러고는 자진 철회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황당한 논리와 함께, 제기된 그 외의 여러 표절에 대해서는 그 정도면 무난해서 다른 대학의 총장 선출에서도 인정되었다든지 혹은 표절 판정의 절차가 잘못되었기에 문제 삼는 것은 부당하다고까지 항변했다. 더욱이 이런 수준의 교수를 스님이라는 것 하나로 비호한 일부 동국대 교직원이 있다.

결국 학내 분규로 발전된 동국대 사태는 단순히 특정 대학의 학내 갈등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우리사회의 대학의 공공성이나 건강한 대학문화를 짓밟는 사례가 되었고 이미 사회 곳곳에서 보이는 재단의 대학 자율성 침해라는 전형적인 사학 비리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여러 대학의 교수협의회와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에서는 이를 밝힌 기자회견을 한 바 있다.

물론 동국대학교가 일반종합 대학이지만 종립대학이라는 점에서 스님 총장이 계신다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표절문제가 드러나자 재빠르게 해당 논문을 철회한 후보가 단지 스님이라는 것 하나로 ‘스님총장’에 적절하다면 스님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스님총장’에 담긴 뜻은 속인들보다 훨씬 높은 도덕적 자질과 힘들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지닌 출가자로서의 스님이고 그렇기에 종립대학의 취지에 맞게 동국대를 여타의 대학에 비교하여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는 염원을 담고 있다. 속인 사회에서도 지탄받는 수준을 근거로 총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저 스님 옷을 입고 있으니 봐달라는 것 외에 다름 아니다.

스님이란 삭발하고, 비구 혹은 비구니계를 받아 지니고, 가사를 입은 출가사문이다. 삼의일발로 표현되는 출가사문의 소유물 중에서 스님의 옷인 가사는 육진에 물들지 않고 끊어버리기에 이진복, 세간의 모든 얽매임을 떠난 이라는 의미에서 출세복, 번뇌를 털어버려 덕이 있어서 소수복, 자비를 행하기에 자비복, 오염된 집착을 멀리하기 때문에 연화복 내지 무구의, 버린 조각을 이어 만들어 자비희사와 탐진치를 버린 삼선심 및 법신혜명을 기르는 까닭에 속인이 보시하면 복의 과보를 받기에 복전의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그 출발이 남루한 분소의(糞掃衣)이기 때문이다. 바루 역시 마찬가지다. 부처님 당시 화려한 바루가 부정되고 질박한 바루로 마무리된 일화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4월 29일 오후 동국대 만해광장에서 표절총장 선임 반대 및 고공농성 중인 최장훈 대학원총학생회장 지지 성명을 발표하려다 맞불법회 중인 스님들에 밀려 조명탑 아래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2015 불교닷컴
지난 주 여느 대학이라면 무자격인 총장후보가 스님총장이라는 미명하에 선출을 강행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동국대 사태를 우려하는 많은 대학의 교수협의회 및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교수들이 교정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그런데 기자회견 시간에 맞춰 등장한 스님들이 예정된 장소의 중앙을 선점하고 굳이 비까지 맞으면서 평소 하지도 않던 법회를 했다. 결국 여러 사람들이 그들을 피해 법회 옆의 좁은 공간에 모여 진행을 하려하자 법회 하던 스님이 하던 법회를 내던지고 즉시 달려와 목소리를 높인다.

진행하던 교수가 스님들 법회를 막는 것도 아니고 학내 구성원이 주최하는 모임이 교내에 있는 것이니 각자 진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서로 배려하기를 요청했으나, 막무가내로 고성으로 감히 일반인들이 스님들 법회를 방해하느냐면서 외치고 이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삼보를 무시하느냐는 논리로 목소리를 높이며 기자회견을 중지시켰다. 결국 동국대 교수들과 동참 교수들이 양보해서 자리 옮겨 기자회견을 마쳤다.

불자라면 그 상황에 대하여 누구나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가사를 입은 출가자가 법회마저 내던지고 속인들에게 달려와 고성으로 외치고 눈을 부라리는 모습, 배려를 바라는 일반인들 앞에 승복을 입고 서서 고압적으로 부처님께 법회를 드리는데 감히 무슨 말을 하느냐는 주장과 더불어 삼보 모독을 거론하는 것은 분명 스님의 모습은 아니었다.

의도적으로 예정된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하는 법회에서, 소통과 배려는커녕 고압적인 무리들로부터 예불을 받는 부처님이란 어떤 부처님일 것인가. 중생과 함께 하면서 그들을 위해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 낮은 곳을 향하라는 부처님 가르침과는 너무 다르다. 중생 아니 최소한 신도들마저 밀어내면서 모셔야 하는 그 스님들의 부처님은 살아있는 부처님일까, 죽은 부처님일까 생각하게 된다.

▲ 4월 29일 수도권 12개 대학, 7개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하려는 장소에서 예정에도 없던 스님들의 맞불법회가 열리고 있다. 이들은 잠시후 기자회견을 하려는 교수들에게 고성을 지르며 "삼보를 비장하지 말라"고 했다. ⓒ사진 제공 = 불교포커스
천년도 전에 단하천연 선사는 진정한 부처가 무엇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단하소불(丹霞燒佛)로 알려진 일화에서 나무나 돌로 만들어 사람 위에 군림하는 부처란 단지 우상에 불과함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우상으로서의 목불은 불에 던져져 잿더미된 바 있다.

이미 그 옛날에 중생과 함께 살아있지 못한 불상은 불타버렸건만, 어찌 21세기 대한불교 조계종 스님들 법회에서 되살아났는가? 종립대학인 동국대학에 어찌 살아있는 부처, 중생의 눈물과 함께 하는 부처는 사라지고 우상숭배의 돌멩이 불상이 들어앉아 있는가? 중생의 애원과는 상관없이 고압적인 모습으로 금칠한 채 앉아 죽어있는 부처님을 모시는 우상숭배 법회 모습과 뗏목을 등에 업고 탐진치로 무장한 승려들은 동국대의 현 주소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요즘 총무원 고위층이 되려면 참선, 염불, 기도가 아니라, 돈과 여자로 수행해야 된다는 자조적인 말도 떠돈다. 동국대 사태가 이렇게 시대착오적으로 건강한 대학문화를 훼손하고 더 나아가 천년 전에 이미 부정당한 우상으로서의 불교를 보여주게 된 상황의 발단에는 스스로 고백했듯이 ‘젊어서 절 뺏던 이들’이 있다.

이제 주변 절 뺏기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몇몇 법인만 남았는지 과거 절뺏기 습관은 시대에 맞게 학교 뺏기로 돌아선 듯하다. 종단의 중앙승가대학도 2년여에 걸친 내홍 끝에 결국 총무원 귄승들의 입맛에 맞도록 정리되었고, 이제 종립 동국대학마저 그렇게 정리되고 있다.

젊어서 절 뺏기나 중앙승가대학의 흉한 과정이란 특정 종교 내의 상황으로 볼 수 있기에 일반사회에서 개입하기는 어려웠을지 모르지만, 동국대학은 일반 종합사립대학이다. 무자격후보자가 단지 스님이라는 명분 하나로 총장으로 되는 것은 대학 건강성을 심하게 퇴행시키는 짓이다.

이미 이사회의 70%를 스님으로 채우고 있으면서도 총장마저 훌륭한 스님이 아니라 표절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스님으로 앉히는 행태는, 명분으로 내세운 스님총장이란 말이 결국은 절 뺏기 하던 땡중들이 이제 학교 뺏기를 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는 말을 자초할 뿐이다.

땡초승의 준말인 땡중은 중 답지 못한 중, 탐진치에 물든 중을 말하기에 생전 인터뷰에서 ‘마 땡초가 좋은 중 될라 안 카나’ 라는 말씀을 하신 성철 스님의 말을 인용하면서, 살아있는 부처님을 우상으로 만들고, 더욱이 일반 속인들보다 더 못한 모습으로 욕심만을 채우려는 승려들은 하루 빨리 동국대와 종단에서 사라지고, 염의로 불리는 승복의 뜻을 제대로 살린 존경스런 스님이 대학과 종단에 함께 하기를 우리사회 대학 구성원의 한 사람이자 불자로서 바랄뿐이다.

/ 우희종 서울대 교수. 바른불교재가모임 상임대표. 참여불교재가연대 공동대표

[기사제보 dasan2580@gmai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34-733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법인명 : 뉴스렙
  • 제호 : 뉴스렙
  • 등록번호 : 서울 아 0043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7-09-17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뉴스렙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etana@gmail.com
  • 뉴스렙「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조현성 02-734-7336 cetana@gmail.com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