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미였던 혜문이 총무원장 자승 스님에게
사미였던 혜문이 총무원장 자승 스님에게
  • 조현성
  • 승인 2015.10.2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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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고보조금 횡령, 상좌가 대신 처벌도...절에는 용과 뱀 섞여 산다"

▲ 한겨레 캡춰

“왜 나 같은 사람이 승려 그만두는 것에 이렇게 민감한 거죠? 원효대사가 아들(설총) 낳았을 때도 이렇게 주목받았을까? 하하하.”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스님이 최근 자신은 더 이상 조계종 승려가 아니라고 했다. 조선왕실의궤, 대한제국 국쇄 등 우리 문화재의 제자리를 찾아온 그였기에 대중의 충격은 컸다. 스님은 혼인해 자신을 쏙 빼닮은 아들을 낳았다. 봉선사에서도 하산했다.

<한겨레>는 24일 '혜문 스님 환속기'를 보도했다. 스님은 "문화재든 인간이든 모두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세상의 순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한때 몸담았던 조계종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한겨레 보도 바로가기)

일면 스님 문중 때문에 절에 있기 불편

스님은 자신을 비승비속이라고 했다. "환속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사람들은 승려 아니면 속인, 속세 아니면 정토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한다. 그냥 하산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수행자의 삶을 포기한 게 아니다. 그건 죽을 때까지 하는 거다"라고 했다.

비승비속의 삶을 택한 이유는 "탱화 반출 의혹을 제기하면서 일면 스님(자승 총무원장 측근)과 사이가 벌어졌는데 일면 스님의 상좌(고승의 대를 잇는 중)가 봉선사 주지로 결정됐다. 일면 스님을 모시는 분들이 봉선사의 주요 구성원이 되었으니 내가 더 이상 절에 있기 불편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야 하는데 마침 부처님 불상을 바라보면서 ‘사내대장부가 쫓겨 다니는 삶을 살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인생 3막을 열자’고 결심을 한 것뿐이다"고 했다. "나의 2막이 승려의 삶이었다면 3막은 ‘비승비속’의 삶이다. 2막에 빌붙어 살면 적당히 명예도 유지하면서 살겠지만 내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고개 돌려 뒤를 보는 부처님

혜문 스님의 집무실에는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돌려 뒤를 보고 있는 부처상 사진이 놓여 있다. 지난해 가을 이 부처상을 발견한 스님은 자신의 갈 길을 확신하게 됐다고 했다.

스님은 “지난해 가을 일본 교토의 에이칸도(정식 명칭은 선림사이지만 보통 에이칸도로 불린다)에서 고개를 돌린 부처상을 발견했다. 이 부처상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수행자는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 걸까. 높은 곳인가 중생인가 등. 내가 비승비속의 삶을 택하겠다고 결심을 굳히게 한 게 이 에이칸도 부처상이다"라고 했다.

부당한 이동 직전이 제자리

스님은 “세상의 모든 물건은 인연에 의해 움직인다. 타의에 의해 부당하게 옮겨진 것은 그 옮겨지기 직전의 곳으로 옮겨져야 한다. 제자리라는 건 우리 시대가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바람나서 가출한 어떤 여성이 있다 치자. 이 여성의 제자리는 어디일까. 가정일까? 아니면 현재 사랑하는 사람 옆일까?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이 여성의 자리가 달라진다"며 본보기를 들었다.

스님은 "문화재 운동을 하다 보면 꼭 지켜보게 되는 장면들이 있다. 문화재를 되찾아오면 꼭 자기가 성공시켰다며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며 "죽 쒀서 관료들 치적 홍보하는 데에 쓰이는 일을 어떤 공무원이 하고 싶어할까. 어떤 성과를 내고 싶어서 문화재 운동을 해선 안 된다"고 했다.

"비구니가 탱화 입수 경위 토로했다더라"

스님은 지난 2004년 일면 스님의 지인으로 알려진 비구니 집에 흥국사 탱화가 보관된 사실을 밝혀냈다. 일면 스님이 흥국사 주지일 때 이 탱화가 유출됐다. 각종 의혹에 일면 스님은 자세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혜문 스님은 "일면 스님이 그것을 훔쳐서 개인 사유재산으로 만들려 한 건 아니었을 거다. 그냥 지인인 비구니에게 불사(절의 사업)가 잘되는 데 쓰라고 주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이어 "문제가 제기됐을 때 진작 돌려놓았으면 되는데 이를 방해하는 어떤 ‘침묵의 카르텔’ 구조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의혹을 부인해 오던) 그 비구니 스님이 최근 솔직하게 탱화 입수 경위를 밝혔다고 한 스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펑펑 울었다고 하더라"고 했다.

스님은 "나는 그냥 부처님의 성보를 지키려 한 것이다. 탱화 유출을 문제제기한 것뿐이지 누구를 괴롭히려던 게 아니다. 결국 탱화는 제자리인 흥국사로 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자승 스님 반대파 목소리 경청해야"

스님은 지난 18년 동안 조계종 승려 생활을 했다. 기자의 "자승 총무원장을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자승 총무원장에 대해 사람들이 비판하는 것은 알고 있다. 총무원장께서 반대파의 목소리를 좀 경청할 필요는 있다. 권력이 너무 한쪽으로 몰려 있도록 시스템화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그러면서 "주지 자리를 놓고 최근 여러 사찰에서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갈수록 경제 논리를 따라가고 부패해지니까 승가가 그런 것을 닮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승가의 혼란상도 사실은 세속의 반영이다. 조계종에는 ‘문중문화’라는 게 있어서 내부 다툼 이런 것들이 오래 못 가고 다 자정작용을 거치게 돼 있다. 다투면 문중에서 징계를 당한다"고 했다.

"조계종, 권력형 비리 은폐 경향 있어"

스님은 "조계종 내부에서 권력형 비리는 좀 은폐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 얼마 전 한 사찰에서 주지가 국고보조금을 횡령했는데 그 주지의 상좌가 대신 처벌을 받고 넘어갔다. 그런 일들이 조계종 내부에 왕왕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래가 보장되니까 그런 것 같다. 그런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  절에는 용과 뱀이 섞여 사는 것이다. 어느 한면만 보고 절을 평가해선 안 된다"고 했다.

스님은 "중노릇하면서 나 때문에 상처 입은 분들이 많다. 나로 인해 법정에 불려나간 사람들의 숫자를 세어보니 700명쯤 되는 것 같다. 친일파 후손들과 문화재 담당 공무원들이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냥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 개인감정으로 그런 게 아니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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