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백담사서 기도 70일 만에 가피
전두환, 백담사서 기도 70일 만에 가피
  • 조현성
  • 승인 2017.04.11 19: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회고록에 남긴 신행담 '백담사에서의 769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70일 가량 지나자 우리 내외를 괴롭히던 증세가 말끔히 사라졌다. 거짓말처럼 마음이 평온해졌다. 오랜 만에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내 얼굴이 맑아지고 빛이 난다고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최근 펴낸 <전두환 회고록> 제3권 제3장 '백담사에서의 769일'에서 이같이 말했다.

▲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백담사에서 기거하던 방 (사진=전두환 회고록)


서의현 총무원장이 백담사 추천

전 씨는 망명과 낙향 대신 추운 절로 유폐를 택했고, 백담사는 손삼수 비서관이 조계종 당시 서의현 총무원장에게 추천 받은 곳이라고 했다.

전 씨는 "그 때까지 백담사라는 절은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었다"면서도 자신이 불자였던 형수를 통해 백담사 대웅전 불사 때 보시를 했고, 대웅전 어느 기둥 주춧돌 밑에는 자신의 이름이 쓰여 있다고 했다.

전 씨는 백담사에서 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 묵었다. 이 방은 두 사람이 눕고 나면 윗목에 책상 하나를 겨우 놓을 수 있었다. 방을 덥히려 아궁이에 군불을 때면 매운 연기가 방을 채웠다. 수도도 전기도 없었다. 겨울에는 머물 사람이 없어 내려앉은 구들장을 고치지 않고 두었는데, 전 씨 내외가 갑자기 묵게 된 곳이다.

전 씨에 따르면, 당시 백담사 주지였던 도후 스님은 그런 방을 내줄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심경을 "필설로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고 했다.

법정 스님, 지학순 주교, 김장환 목사 등 다녀가

전 씨는 자신이 백담사에 있는 동안 박삼중 스님, 김장환 목사, 법정 스님, 지학순 주교가 찾아와서 위로와 기도를 해주고 갔다고 밝혔다.

전 씨는 예불로 마음을 달래보려 했지만 광주특위가 최규하 전 대통령을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했다는 소식 등으로 울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어느 날, 이것도 인연이라며 전 씨 내외는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일해'라는 아호를 준 탄허 스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면서 '국태민안과 영가천도' 기도를 했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백담사 유폐 시절, 염불하는 모습 (사진=전두환 회고록)


광주민주화운동 희생 영령 추모

전 씨는 <회고록>에 기도를 하면서 개국 이래 순국 영령, 제2차대전 희생된 한민족 영령, 6.25전쟁 희생 영령, '광주사태'[광주 민주화 운동] 희생 영령, 삼청 교육 희생 영령 등의 천도를 빌었다고 적었다. 기도는 매일 새벽 4시, 오전 10시, 오후 2시, 오후 6시 네 차례씩 했다. 이 가운데 오후 2시 기도는 불교 교리 공부나 경전을 읽는 것으로 대신했다.

전 씨는 경전 공부를 한 오후 2시 기도 외에 하루 세번 기도 때 마다 108배를 했다. 기도를 시작한 지 20일째 첫번째 장애가 왔다. 지독한 몸살이었다.

50일이 지나자 육식을 금해서 생긴 메스꺼움과 구토 빈혈을 동반한 입덧 증세가 나타났다. 전 씨는 죽어도 기도하다가 죽겠다는 각오로 버텼다.

내 잘못이라 해봤지만 분노가

전 씨는 "백일 기도 동안 아무도 미워하지 말자. 모두 내 잘못이고 내 탓이라고 생각하자고 다짐했지만, 1분도 지나지 않아 억울함이 엄습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어렵게 평화적 정부 이양을 했고, GNP 600억 달라에 빚이 200억 달라인 나라를 4000억 달라 부자 나라로 만들어 넘겨줬는데 수모를 겪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잠이 들었다가도 분해서 벌떡 일어나 잠을 설칠 때가 많았지만, 전 씨는 닥치는 대로 경전을 읽는 것으로 극복했다. 사경도 하고 목청 높여 고성염불도 했다. 다라니들을 외우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6.29선언 결심할 때 반드시 민정당이 이겨야 한다는 탐심을 버렸더라면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씨 마음에 쌓였던 분노의 독이 녹아 한풀이 정국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모든 것 내게서 비롯, 연기 깨달아

70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동안 전 씨 내외는 자신들을 괴롭히던 증세가 말끔히 사라지고 거짓말처럼 평온해졌다. 사람이 겪는 모든 일의 원인은 모두 자신에게 있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게 됐다고 했다. 인과가 옳은 말씀 임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했다.

이후 전 씨가 새 겨울을 나려할 때 대구공고 후배인 '귀뚜라미 보일러' 최진민 회장이 연탄보일러를 놔줬다. 창틀도 바꿨다. 도배 등은 이순자 여사가 직접 했다.

전 씨는 "백담사에서 두 차례 겨울을 지내는 동안 많은 사람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다"고 했다. "서암 월산 숭산 스님 등 전국 사찰 고승대덕이 찾아와 마음의 양식이 되는 법문을 들려줬다"고 했고, "천주교 지학순 주교가 예수의 고난을, 김장환 목사가 신도들과 단체로 찾아와 기도를 해줬다"고 했다.

이순자 여사도 모든 것 '내 탓'
 
전 씨의 부인 이순자 여사는 <회고록>에 수록한 수기 '백담사에서 세번째 겨울을 맞으며'에서 "백일기도 시작 후 기도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덜어내기 위한 싸움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백일 기도 70일 만에 바뀐 자신을 표현하면서는 "덜어내어진 것이 아니라 도려내어진 것 같았다.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한편, 이 같은 전 씨 내외의 신행담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회고록>은 광주민주화 운동 폄하 왜곡 등 참회와 반성이 부족한 뻔뻔한 진술로 변명하고 있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전 씨는 <회고록> 제2권에서는 불교계를 군홧발로 짓밟은 10.27법난을 자신은 몰랐다고 했다. 이 같은 이유들로 대형서점에서는 전 씨의 회고록이 전시되는 것만으로도 일부 고객으로부터 심한 항의를 받고 있다.
 
[불교중심 불교닷컴,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cetana@gmail.com]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newsrep21@gmai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