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한 사람이 있다
여기에 한 사람이 있다
  • 박병기/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
  • 승인 2017.05.0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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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기] 한국불교의 위기를 말한다 (9)

‘부처님 오신 날’, 이 땅의 평화와 정의를 다시 묻는다

박병기/한국교원대학교 교수, 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

 

▲ 박병기 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불교닷컴

여기에 한 사람이 있다.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서이다.
신과 인간의 행복과 복지, 이익을 위하여
세상에 대한 자비심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다.(『앙굿따라 니까야』 1부 13-1)

철쭉과 영산홍이 어둠 속 등불처럼 빛나는 시절에 다시 부처님 오신 날을 맞고 있다. 몇몇 곳에서 어이없는 이유로 길거리 연등이 달리지 못하고 있다지만, 그런 장애마저도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심을 축하하는 우리 마음을 막아내지는 못한다. 인연이 있는 절에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비는 연등을 달고 평소에는 잘 접하지 못하는 경전 말씀을 새삼스럽게 펼쳐들며 차라도 한 잔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번 부처님 오신 날도 축복의 날로 새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사롭지 않다. 촛불집회를 통한 대통령 파면으로 앞당겨진 대선에서 어느 새 그 촛불정신은 사라지고 당선과 정파의 이익을 위해 빨갱이 담론과 가짜뉴스까지 동원하는 구태가 나타나고 있고, 그 와중에 미국 대통령은 약속을 어기고 사드라는 엄청나게 비싼 무기를 운용하는 수조원대의 비용을 우리가 대야 한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책임을 져야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그 목소리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마저 보여, 과연 그들이 주권국가의 지도자가 맞기는 한 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평화가 먼저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가장 앞서는 것은 평화다. 이 땅에 어떤 이유에서든지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미 국방력을 비롯해 모든 국력에서 북한을 우월하게 앞서고 있는 우리는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정면충돌하여 한반도 전쟁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야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과제를 현실 속에서 수행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 같은 주변국들과 긴밀한 외교를 해가야 하겠지만, 우선은 남북한 사이의 대화 통로를 적극적으로 확보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한반도 평화의 주체가 남북한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먼저 인식하고 현실 속에서 그렇게 갈 수 있는 길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당사자에서 우리가 소외되어 있었던 역사적 조건이 있고, 그것은 다시 현재의 평화협정 체결의 주체로 우리보다 미국이 우선권을 갖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약 70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와 대화를 하면서도 핵무기를 개발하는 이중전략을 구사해왔고, 그것을 빌미로 삼아 이명박근혜 정권은 아예 남북한 교류의 통로마저 막아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현재 상황의 주도권 자체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빚고 있기도 하다.

어떻게 해야 이 땅에 평화가 정착할 수 있을까? 단순한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이지만, 좀 더 적극적인 의미의 평화는 마음의 평화까지 포함한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이 둘의 순서는 역전된다. 다시 말해서 모든 평화의 시작은 바로 나 자신의 마음인 것이다.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며, 그 마음에서 모든 것이 만들어진다. 나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수레의 바퀴가 황소의 발자국을 뒤따르듯이 괴로움이 그를 따른다.(『담마빠다』 1)

물론 한반도 평화 문제를 우리 남북한 구성원들의 마음의 문제로만 규정짓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거나 세상의 흐름을 외면하는 개인윤리적 한계를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구성원 개개인들이 얽히고설킨 한반도의 지정학적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눈을 갖고 있다고 전제하면, 결국 모든 문제의 출발점은 각 개인들의 마음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엄연한 진리이다.

어떤 지역에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게릴라 반군의 지도자 이야기가 그 진리성을 입증하는 좋은 사례이다. 오랜 시간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에 있던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한 철학교수가 중재를 맡게 되었다. 그 교수는 자신의 친한 친구도 반군에 의해 처형당한 적대감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죽음을 감수하면서 반군지도자와의 만남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대화의 가능성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어떤 말도 서로 신뢰할 수 없었지만, 억지로 만남을 계속해가면서 그 지도자가 철학적인 물음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단지 철학적인 담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상호신뢰가 쌓여갔고, 마침내 그 반군지도자는 정부와의 협상에 응하게 되었다.

협상의 장에 나서기 전 반군지도자는 철학교수에게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교수는 자신이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어떤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약속했고, 그것이 결국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해온 평화를 가능하게 한 신뢰로 작동했다. 바로 두 사람의 마음을 관통한 신뢰가 그 지역과 국가의 평화를 가져온 씨앗이 된 것이다. 이런 사례는 생각보다 많고, 우리 한반도 평화 문제 또한 이런 접근이 우선시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하고, 그 과정에서 북한과 미국, 중국을 설득하는 대화와 협상에 나서야 한다. 우리는 결코 약소국이 아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고, 국방력 또한 세계적인 수준이어서 마음만 낸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정의(正義)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전통 속에서 정의는 곧 올바름이고 상식을 의미했다. 그것은 윤리의 차원을 넘어서서 ‘그런 법은 없다.’는 나직한 선언 속 법의 차원까지 포괄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올바름이 개인의 삶의 영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회구조의 문제로 확장된 것이 사회정의이고, 그런 점에서 사회정의 또한 우리 마음 속 올바름의 지향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런데 사회가 복잡해지고 사는 것이 팍팍해지면서 이 두 차원의 정의 사이에 단절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런 단절 속에서 개인의 삶에 충실하는 사람이 사회정의에는 해를 끼치는 결과를 낳는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 인간의 삶은 다른 사람들과의 연기적 의존 속에서만 펼쳐질 수 있고, 그 다른 사람의 범주에는 지구촌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가 포함된다. 따라서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올바름의 지향을 간직해내고자 한다면, 그 연기적 얽힘과 의존 상황에 대한 직시(直視), 즉 여실지견(如實知見)을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정의문제는 여러 차원에서 나타날 수 있지만, 가장 빈번하고 중요한 차원은 공정한 경쟁과 정당한 분배 문제이다. 공정한 경쟁은 타고난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경쟁의 보장을 의미하고, 정당한 분배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이익이 보장되는 한에서만 허용하는 자유로운 경쟁과 분배를 의미한다. 그것을 위해 최저임금의 보장이나 기본소득제 같은 제도적 대안이 필요하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이른바 ‘흙수저’들이 공정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출생에 의해 브라흐민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에 의해 브라흐민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맛지마 니까야』 98)

출생이 아닌 행위에 의해 평가받아야 한다는 부처님 말씀은 바로 정의에 관한 기본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 가르침은 아예 어떤 구체적인 행위를 할 수 없는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포용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어야 하고, 그 실천의 출발점은 우선 우리 승가공동체 안의 빈부격차와 차별 해소여야 한다. 그것이 다시 재가자를 포함하는 사부대중공동체로 확산될 수 있으면, 불교는 우리 시민사회 전반의 정의 문제를 해소하는 차고 맑은 샘물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자비심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을 다시 맞으며, 이 땅에 평화와 정의의 씨앗이 골고루 떨어져 열매 맺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두 손 모은다.

[불교중심 불교닷컴.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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