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진정한 으뜸재가자 '핫타까 알라바까'
이 시대 진정한 으뜸재가자 '핫타까 알라바까'
  • 이혜조
  • 승인 2017.12.1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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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불자대상과 재가불자상 시상식 초대를 받고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찬바람이 매섭습니다. 연일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일 걸어 다니는 학의천 물도 일부 얼었습니다. 오늘 아침뉴스에 한강물이 얼었다고 하는데 가장 일찍 언 것이라 합니다.

연일 크고 작은 행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송년회, 결산모임 등 연말이 되면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모임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초대를 받으면 가급적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힘을 실어 주는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게으르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대개 ‘귀차니즘’이 발동된 것이라 합니다.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귀찮고 번거로운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날씨도 춥고 실익도 없을 것이라 판단되면 더욱더 움추려듭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고립되는 삶을 살아갑니다.

항상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자들이 있습니다. 내가 거기에 가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 따지는 것입니다.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득될 것이 없다고 판단 되면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 귀차니즘까지 더해지면 나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대단히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게으른 자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죽은 자와 같습니다. 죽은 자는 움직임 없이 가만 있듯이, 게으른 자는 이미 죽은 자와 같습니다. 그래서 법구경에서도 “방일하지 않은 사람은 죽지 않으며 방일한 사람은 죽은 자와 같다.”(Dhp.21)라 했습니다. 그런데 게으른 자가 부지런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감각적 욕망입니다. 아무리 게으른 자라 해도 밥먹는 것에는 게으르지 않습니다. 술마시고 담배피우는 등 오욕을 즐기는데 있어서 게으르지 않습니다. 컴퓨터 게임을 하고 주식을 하는 등 개인의 욕망충족을 위한 삶에는 게으르지 않습니다.

움직이는 자는 살아 있는 자입니다. 부지런히 활동하는 자는 산 자입니다. 그것도 자신만 아니라 타인을 위하여 활동하는 자는 활력이 넘칩니다. 자신뿐 만 아니라 이 세상을 바꾸어 보고자 하는 사람은 부지런한 자이고 살아 있는 자입니다. 그런 자들을 참여불교재가연대 2017년 송년의 밤에서 보았습니다.

참여불교재가연대의 초대를 받고

참여불교재가연대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2017년 재가불자상 시상식을 겸한 송년의 밤입니다. 참여불교재가연대가 입주해 있는 ‘우리함께 빌딩’ 2층에 있는 문화살롱 ‘기룬’에서 열렸습니다.

행사는 시종 유쾌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참여불교재가연대 젊은 간사 두 명이 재치 있게 행사를 이끌어 갔습니다. 요즘 어느 모임에 가봐도 나이 든 사람들 위주인데 20대 남녀 간사가 사회를 보며 재치 있게 진행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조직이나 단체에 젊은 피가 수혈 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행사는 여법하게 진행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삼귀의부터 했습니다. 삼귀의할 때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승보에 대한 것입니다. 음악에서는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노래가락이 흘러 나오지만 참석한 사람들 거의 대다수는 “거룩한 승가에 귀의합니다”라고 바꾸어 부릅니다. 한국불교에서 아직까지 승보에 대한 개념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불교를 개혁하려면 가장 먼저 승보개념부터 뜯어 고쳐야 할 것입니다.

▲ 지난 15일 열린 참여불교재가연대 재가불자 시상식 및 송년의 밤 행사에서 삼귀의하는 불자들. ⓒ진흙연꽃

행사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 됐습니다. 1부에서는 올해의 불자상 시상식이 있고 2부에는 식사와 여흥의 시간입니다. 참석한 사람들은 불교지식인들과 현장활동가들입니다. 한국불교를 이끌어 가는 또 다른 축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불교가 스님들만의 불교가 아니라, 특히 비구승만의 불교가 아니라 사부대중의 불교라는 것을 당당히 선언하는 것 같습니다.

불자대상과 재가불자상

참여불교재가연대는 한국의 재가불교운동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여러 재가활동단체가 있지만 가장 역사가 오래 되고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활동 결과 중의 하나가 재가불자상 시상일 것입니다.

불자대상이 있습니다. 매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 하여 조계종에서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하여 주는 상입니다. 2017년 불자대상 수상자는 미스코리아 진 출신의 김나나, 베드민턴 국가대표 이용대, 안동일 변호사, 정상석 시인이 가 받았습니다. 인기인이나 명망가 위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불자대상수상자를 보면 이전에는 유명탤런트나 스포츠스타, 사성장군이 독차지 하다 시피했습니다. 유명인이 단지 불자라는 이유로 선정된 듯합니다. 이른바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인물에게 불자대상을 수여하는 식입니다. 이런 수상 방식에 대하여 시류에 편승하는 것이라 하여 비판글을 쓴 바 있습니다.

조계종에 불자대상이 있다면 참여불교재가연대에서 주는 재가불자상이 있습니다. 불자대상이 시류에 편승한 명망가 위주라면, 재가불자상은 현장에서 실천적 삶을 살아 가는 불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처한 위치나 하는 일에 따라 극과 극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올해 참여불교재가연대 재가불자상 수상자는 네 명입니다. 재가불자상으로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현장실천단(현장실천단)’과 ‘미래를 여는 동국공동추진위원회(미동추)’입니다. 길벗상으로는 ‘성평등불교연대’, 두레상으로는 ‘신정욱’입니다. 네 개의 상 중에 세 곳은 단체입니다.

▲ 재가불자상 시상식. ⓒ진흙연꽃

한국불교가 다시 한번 중흥하려면

이번에 재가불자상을 받은 현장실천단에서 활동한 바 있습니다. 본격적인 활동은 지난 5월 22일 한 불자님이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일인피켓시위한 것이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스님들과 불자들이 피켓팅에 참여하여 뜨거운 여름을 달구었습니다. 이렇게 한번 불이 붙자 광화문에서 조계사까지 삼보일배행진이 2주에 한번 열렸고, 8월 말 부터는 보신각광장에서 매주 목요일 촛불법회가 열렸습니다.

촛불법회가 열릴 때 마다 천명 이상 참여했습니다. 보신각광장에서 조계사까지 촛불행진이 이어졌고 불자들은 자승아웃과 적폐청산을 외쳤습니다. 이후 스님들의 릴레이 단식이 이어지고 수 천명이 참석한 대규모 불교도대회도 개최되었습니다. 그러나 범계승공동체를 부수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범계승공동체는 이익으로 뭉쳐진 집단입니다. 이익으로 똘똘 뭉쳐진 집단에서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불온시합니다. 지금 이대로가 좋은 것입니다. 바꿀 생각도 개혁할 의지도 없습니다. 그 이면에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돈이 되기 때문에 꽉 움켜 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활동을 함으로 인하여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한국불교는 쇠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청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경쟁력은 신도숫자가 아닙니다. 종교의 경쟁력은 청정에 있습니다. 종교가 청정하면 신도는 늘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불교에서 신도가 대폭 줄어 든 것은 종권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이 청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불교가 다시 한번 중흥하려면 승가집단이 청정해야 합니다.

재가불교활동을 하는 것은

재가불교활동을 하는 것은 남이 시켜서도 하는 것이 아니고 생계수단으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의식을 가진 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세상을 바꾸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자신도 구제하지 못한 자는 남도 구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지 않는 자입니다. 이런 자를 화장터에서 타다만 나무토막 같은 자라 합니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 실천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실천하지 않는 자입니다. 자신의 앞가림도 못하는 자가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고 했을 때 세상사람들은 크게 웃어 버릴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실천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실천하지 않는 자입니다. 어찌 보면 대단히 이기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타인의 이익을 실천하고 자신의 이익을 실천하지 않는 자보다는 더 낫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구제하려면 먼저 자기자신부터 구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자신과 타인의 이익을 위하여 실천하는 삶입니다. 먼저 자신의 이익을 실천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타인의 이익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승들이여, 이 가운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실천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는 사람은 이러한 모든 사람 가운데 최상이고 수승하고 가장 훌륭하고 훨씬 탁월하다.”(A4.95)라 했습니다.

“알라비의 핫타까처럼 되기를!”

파사현정의 현장에 나서려면 먼저 자신의 수양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가르침을 실천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세상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일을 해야 합니다. 부처님 제자 중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앙굿따라니까야 서원의 경을 보면 “내가 장자 찟따와 알라비의 핫타까처럼 되기를!”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는 재가에서 으뜸 가는 남자신도가 여럿 있는데 그 중에서도 두 제자를 지칭한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핫타까 알라바까’가 있습니다.

부처님은 왜 ‘알라비의 핫타까처럼 되기를!’라고 서원하라고 했을까요? 이는 핫타까 알라바까가 재가의 남자신도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알라비 핫타까를 으뜸제자로 본 것은 사섭법을 잘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재가의 으뜸가는 남자신도 핫타까 알라바까는 부처님에게 사섭법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대중을 세존께서 가르쳐주신 네 가지 섭수의 토대로 이 대중을 섭수합니다. 1) 저는 ‘이 사람은 보시를 베풀어 섭수해야 한다.’라고 알면, 그 사람을 보시를 베풀어 섭수합니다. 2) 저는 ‘이 사람은 사랑스런 말로 섭수해야 한다.’ 라고 알면, 그 사람을 사랑스런 말로 섭수합니다. 3) 저는 ‘이 사람은 도움을 주는 일로 섭수해야 한다.’ 라고 알면, 그 사람을 도움을 주는 일로 섭수합니다. 4) 저는 ‘이 사람은 동등한 배려로 섭수해야 한다.’ 라고 알면, 그 사람을 동등한 배려로 섭수합니다.”(A8.24)

사섭법에서 가장 주목하는 말은 네 번째 ‘동등한 배려’입니다. 이 말은 대승에서 말하는 동사섭(同事攝)과 비교됩니다. 대승에서 말하는 동사(同事)의 사전적 의미는 “보살의 동체대비심에 근거를 둔 것으로 중생들에게 접근하여 함께 일하고 생활함으로써 그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일이다.”라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초기경전에서 말하는 동사는 이와 전혀 다릅니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동사는 동등한 배려입니다.

이 시대의 핫타까 알라바까들

조직이나 단체의 리더가 되려면 덕이 있어야 합니다. 불교적으로 본다면 사무량심과 사섭법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특히 사무량심에서는 ‘더불어 기뻐함(mudita)’과 사섭법에서는 ‘동등한 배려(samānattatāya)’가 가장 핵심이라 봅니다.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은 타인의 성공이나 복지에 대하여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해 주는 것입니다. 또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타인의 눈 높이에 맞추어 동등하게 배려 해 주는 것입니다.

▲ 재가불자상 수상자들과 참여불교재가연대 송년회 참석자들 ⓒ진흙연꽃

연말 시상식장에서 재가불자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항상 현장에서 묵묵히 자신의 할 바를 다 하는 사람들입니다. 한국불교를 이끌어 가는 불교지식인들이자 현장활동가들이고 오피니언 리더들입니다. 남이 알아 주든 말든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자세로 봉사하는 자들이 이번에 상을 받았습니다. 이 시대의 핫타까 알라바까 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리더가 되려 한다면

핫타까 알라바까는 부처님의 으뜸 제자 중의 하나입니다. 부처님의 재가 남자신도 중에 으뜸 제자가 9명인데 그 중에 네 가지 섭수의 기초로 대중을 돕는 님 가운데 제일(catūhi saṅgahavatthūhi parisaṃ saṃgaṇhantānaṃ aggaṃ)로 잘 알려졌습니다. 그런 핫타까 알라바까에 대하여 부처님은 여덟 가지 놀랍고 경이로운 원리를 가졌다고 칭찬합니다. 그 여덟 가지는 1)믿음이 있고, 2)계행을 지키고, 3)부끄러움을 알고, 4)창피함을 알고, 5)많이 배우고, 6)관대하고, 70지혜를 갖추었고, 8)겸손을 갖춘 것이라 했습니다. 부처님은 특히 겸손에 대하여 “자신에게 착하고 건전한 것들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A8.23)라 했습니다. 핫타까 알라바까는 사섭법을 실천했지만 티내지 않은 것입니다. 대승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를 실천한 자라 볼 수 있습니다.

재가의 으뜸 제자 핫타까 알라바까는 오늘날 리더의 전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재가자임에도 오백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따랐는데 이는 사섭법에 기반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겸손입니다. 리더가 되고자 하는 자라면 먼저 잘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말 하기보다 잘 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등하게 배려해 주는 것입니다. 눈높이에 맞추어 역지사지의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겸손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무량심과 사섭법에 기반한 겸손과 경청과 배려의 리더십입니다.

[불교중심 불교닷컴.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dasan25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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