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가족처럼
여성을 가족처럼
  • 진흙속의연꽃
  • 승인 2018.02.0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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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의연꽃]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수컷들 세상에서

단체 카톡방에 청원을 알리는 공지가 떴습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여검사 성폭력사건에 대한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청원 움직임을 보았으나 단체 카톡방에서 뜬 것을 보니 전 국민들의 관심사인 것 같습니다.

최고권력기관의 성폭력

검찰은 최고 권력기관입니다. 그리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보루입니다. 그럼에도 성폭력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상급자가 부하 여검사에게 집적댔다는 것입니다. 많이 배우고 든 자들로서 이 사회에서 오피니언 리더들이라 자부 하는 자들의 성추행 행각이 충격적입니다.

성폭력, 성추행, 성폭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것입니다.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고 은폐 되었을 뿐 우리 주변에 늘 있었던 것입니다. 정보통신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하여 드러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성폭력, 성추행, 성폭행 사건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반은 남성이고 이 세상의 반은 여성입니다. 성(性)이 분리 되어 있다는 것은 성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음을 말합니다. 식욕과 더불어 근본 욕구인 성욕이 만족되지 않으면 살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배고프면 밥을 먹듯이 성욕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계에서 식욕에 대한 것은 없지만 “사랑을 나눔에 잘못을 범하는 것을 삼가는 학습계율을 지키겠습니다.”라 하여 음계(淫戒)가 있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그 사람의 행위에 따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욕계(欲界)라 합니다. 욕망으로 이루어진 세계의 가장 큰 특징은 성이 구별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남성은 여성에게 끌리고, 여성은 남성에게 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욕계에서 뭇 삶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성의 구별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하여 채택된 방식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인간이 자가 복제한다면 유전자는 동일할 것입니다. 동일한 유전자는 바이러스의 공격에 매우 취약합니다. 바이러스의 침투로 인하여 전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의 구별로 인하여 서로 반반의 유전자를 가진 자식을 가졌다면 바이러스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나 전멸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인류가 유성생식을 채택한 이유라 봅니다.

이 세상에 자신과 똑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라도 자세히 보면 다른 면이 있습니다. 사람들 얼굴이 모두 다르듯이 성향 또한 모두 다릅니다. 이전에 지은 업에 따라 형성되었기 때문에 업생(業生)이라 합니다. 그래서 업이 자신의 주인이고, 자신은 업의 상속자라 합니다.

업에 의하여 차별됩니다. 생긴 모습이 다르고 성향이 다른 것도 업에 의하여 차별화 된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것도 업에 따른 것입니다. 업이 뭇 삶을 차별화 한다면, 현재 나의 행위는 미래의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 됩니다. 행위에 따라 농부도 되고 기술자도 되고 도둑놈도 되고 성직자도 됩니다.

최고권력기관에서 성폭력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또한 분노할 일입니다. 비록 그가 최고권력기관의 고위직책을 가진 자라 하더라도 성폭력을 행사하는 한 그는 성폭행범입니다. 행위가 그를 성폭행범으로 만든 것입니다. 최고권력기관이 그 정도라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불 보듯 뻔 한 일입니다.

약육강식의 수컷들 집단에서

잊을만하면 성폭력, 성추행, 성폭행 사건이 뉴스에 나옵니다. 군대에서 성폭력 사건도 큰 이슈가 된 바 있습니다. 회사 내에서 성추행 사건도 한 때 회자 되었습니다. 섬마을 여교사 집단 성폭행 사건은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단체에서든지 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성폭력, 성추행, 성폭행은 주로 남성위주 집단에서 일어납니다. 속된 말로 수컷들 집단에서 발생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수컷들만 모아 놓으면 주도권 쟁탈을 하는데 동물들의 습성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수컷들은 서열화 되고 엄격한 위계질서가 생겨납니다. 권력을 가진 수컷은 모든 것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동물의 왕국에서 힘센 수컷이 모든 암컷을 독차지 합니다. 수컷들 위주의 권력기관도 윤리가 없다면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까지 뉴스에 발표된 바에 따르면 성폭력은 남성중심의 특수사회에서 발생했습니다. 수컷들만 있는 곳에 여성이 있을 때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구나 미모와 몸매가 있다면 더욱 더 대상이 될 것입니다.

비도덕적인 수컷은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봅니다. 그가 아무리 많이 배우고 지위가 높아도 성차별에 대한 윤리가 부재하다면 발정 난 수컷에 지나지 않습니다. 단지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사는 동물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성이 서로 반반인 욕계에서 어느 수컷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여색에 미치면

입이 있다고 하여 잘못 놀리면 화를 당합니다. 수컷이라 하여 여성을 성적대상으로만 보았을 때 패가망신할 수 있습니다. <숫따니빠따> ‘파멸의 경(Sn1.6)’에 따르면 여색에 미치면 파멸의 문이라 했습니다. 또 자기 아내에게 만족하지 않고 매춘부와 놀아나고 남의 아내와 어울리는 것도 파멸의 문이라 했습니다.

파멸의 문에 이르는 조건은 많습니다. 경에 따르면 “젊은 시절을 지난 남자가 띰바루 열매 같은 가슴의 젊은 여인을 유인하여 그녀를 질투하는 일로 잠 못 이룬다면, 그것이야말로 파멸의 문입니다.”(Stn.110)라 했습니다. 돈 있거나 권력 있는 자가 그것도 나이가 지긋하여 노년에 이른 자가 미모와 몸매를 가진 젊은 여성을 유인한다면 파멸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상황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노인이나, 귀한 자나 천한 자나 성욕이라는 근본적인 욕구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성에 대한 윤리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면 여성은 성적 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립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사회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

부끄러움(良心)과 창피함(羞恥心)은 이 사회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입니다. 두 기둥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집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시대가 되어 강한 자는 먹고 약한 자는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됩니다. 어머니도 없고 이모도 없고 스승의 사모도 없는 짐승의 세계가 됩니다.

<앙굿따라니까야>에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어느 수행승이 부처님에게 “세존이시여, 여기 싸밧티 시에서 어머니와 아들 두 사람이 수행녀와 수행승으로 안거에 들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자주 보기를 원했습니다. 어머니도 아들을 자주 보기를 원했습니다. 아들도 어머니를 자주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자주 본 뒤에 서로 접촉하게 되었고 서로 접촉한 뒤에 친밀해지고 친밀해진 뒤에는 애욕에 빠지고, 애욕에 빠진 뒤에 수행자의 배움을 버리지 않고 타락을 숨기고 성적인 교섭을 했습니다.” (A5.55)라고 말했습니다. 짐승들 세계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자상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를 때 짐승과 다름없습니다.

수컷들 위주의 특수한 사회가 있습니다. 서열화 되고 위계질서가 엄격한 수컷세상에서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른다면 약육강식의 짐승의 세계가 되어 버립니다. 수컷의 세상에서 여성은 인격체가 아니라 수컷의 성적대상이 됩니다. 이 나라 최고권력기관에서도 볼 수 있고, 막강한 힘을 가진 집단에서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종교집단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2017 참여불교재가연대 재가불자상 '길벗상'을 수상한 성불연대. 지난해 시상식.

“성평등이라는 말이 필요 없는 그날까지”

작년 연말 참여불교재가연대에서 시상이 있었습니다. ‘재가불자상’시상식이었습니다. 조계종단의 유명불자들을 대상으로 한 ‘불자대상’과 비교 되는 상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자신의 할 바를 묵묵히 다하는 불자들에게 주는 상입니다. 시상자 중에는 ‘성평등불교연대’가 있습니다.

성평등불교연대(성불연대)에서 ‘길벗상’을 받았습니다. 성불연대는 불교계 내의 여성차별과 불평등, 그리고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여성 불자들을 중심으로 2017년 3월 발족되었습니다. 직접적인 계기는 선학원 이사장의 성추행 의혹이 교계언론을 통해서 알려지고 난 다음부터입니다. 그러나 불교계 성차별과 성불평등, 성폭력의 역사는 뿌리가 깊습니다.

성불연대 대표 수상자는 소감을 간단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성평등이라는 말이 필요 없는 그날까지”라고 구호 외치듯이 말했습니다. 성불연대의 활동시한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노출의 계절 여름에

언젠가 교계신문 칼럼에서 읽은 글입니다. 어느 스님은 여름이 되면 시선을 어느 곳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노출의 계절인 여름에 여인들의 옷차림은 반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일까 초기경전에서는 탁발나간 수행승이 여인의 옷차림에 마음이 흔들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수행승은 여인을 보았습니다. 경에 따르면 “그는 거기서 가볍게 옷을 걸치거나 야하게 옷을 걸친 여인들을 보게 된다. 그렇게 가볍게 옷을 걸치거나 야하게 옷을 걸친 여인들을 보게 되면, 탐욕이 그의 마음을 엄습한다.”(S20.10)라 되어 있습니다. 여인을 본 수행승은 욕정이 그의 마음을 엄습하여 죽을 정도의 고통이나 괴로움을 겪는다는 가르침입니다.

수행승들에게 여인은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보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눈이 있어서 보이고 귀가 있어서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인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부처님은 여인들에게 인기 좋은 아난에게 “보지 말라.” “말하지 말라.” “알아차림을 유지해라.”라고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여인은 가급적 보지 않는 것이 최상입니다. 자꾸 보다 보면 친근해집니다. 친근해지면 말하게 됩니다. 수행승이 여성과 대화하면, 친교가 생겨나고 친교가 생기면, 정이 깊어지고, 번민하고, 계행을 파괴하고 괴로운 곳을 채우는 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았거든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하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그럴 경우 알아차리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새김을 확립해야 한다. (Sati upaṭṭhapetabbā)”라고 말씀 했습니다.

여인을 대하는 세 가지 방식

부처님은 수행승이 여인과 말을 할 때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어떻게 알아차려야 하는가? 다음과 같이 여인을 대하는 세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어머니 같은 여인에 대하여
어머니를 대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누이 같은 여인에 대하여
누이를 대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딸 같은 여인에 대하여
딸을 대하는 마음을 일으키라.” (S35.127)

부처님이 수행승들에게 여인을 대하는 방식을 설명한 것입니다. 나이가 어머니 연배라면 어머니를 대하는 마음을 내고, 나이가 누이 같은 연배라면 누이 대하듯 하고, 나이가 딸과 같은 연배라면 딸을 대하듯 하라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가족 중에 이 세 가지 경우에 포함되지 않는 여인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여인에 대하여 이 세 가지 범주에서 대한다면 여인을 보지 않는다거나 말을 걸지 않는다거나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발정 난 듯 수컷들의 세상에서

사회가 온통 수컷들의 세상입니다. 발정 난 수컷들처럼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적대상으로 봅니다. 수컷들 위주의 집단 어디에서나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수컷들만 모여 있는 특수한 세계에서 유독 심합니다. 그것도 돈 있고 힘 있는 집단에서 빈번히 성폭력, 성추행, 성폭행이 발생합니다. 이런 현상은 종교집단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수컷들 집단에서 성폭력, 성추행, 성폭행이 발생합니다. 이럴 때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요청됩니다. 여성은 성적 대상이 아니라 남성과 똑같은 인격체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인면수심의 수컷일지라도 가족은 있습니다. 가족 중에는 어머니도 있고 아내도 있고 딸도 있을 것입니다. 여성을 가족처럼 대한다면 성폭력, 성추행, 성폭행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탁월합니다.

부처님은 수행승이 여인과 대화할 때는 어머니처럼, 누이처럼, 딸처럼 대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가르침을 기억하고 되새겨서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어머니 연배는 어머니처럼 알아차리고, 누이의 연배는 누이처럼 알아차리고, 딸의 연배는 딸처럼 알아차리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수컷 위주의 성차별과 성불평등 시대에 이만한 가르침은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일까 ‘여성가족부’라는 말이 마음에 다가 옵니다.

여성을 가족처럼

정부조직에 여성가족부가 있습니다. 왜 여성부라 하지 않고 여성가족부라 했을까? 이 말에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대입하면 쉽게 풀립니다. 여성을 가족처럼 대하라는 뜻 같습니다. 부서 명칭을 정할 때 이런 사실을 알고 정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여성가족부는 탁월한 작명이라 봅니다. 성차별과 성불평등의 시대에 수컷들의 세상에서 성폭력, 성추행, 성폭행이 늘 발생하는 이때 이만한 작명이 없습니다. 어느 수컷이든지 여성을 어머니처럼, 누이처럼, 딸처럼 가족처럼 대하면 “성평등이라는 말이 필요 없는 그날”이 될 것입니다.

/진흙속의연꽃

[불교중심 불교닷컴.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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