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깎은 머리 만지며 되묻는다. '너 불자 맞니'"
"어제 깎은 머리 만지며 되묻는다. '너 불자 맞니'"
  • 덕암 박종린/불력회 상임법사
  • 승인 2018.08.2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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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린] 세 번에 걸친 삭발을 돌이켜보며

불력회 덕암 박종린 법사가 21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삭발했다. 박 법사가 삭발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박 법사는 삭발과 함께 매일 길바닥에서 삼천배를 올리며 조계종 적폐청산과 전통사찰방재예측시스템 사업 검찰 조사와 관련해 책임자인 자승 전 총무원장의 공개소환 조사를 요구했다. 23일 삼천배 정진을 1차 회향하는 박종린 법사가 그동안 세 차례의 삭발에 대한 소회를 본지에 보내와 게재한다. <편집자>
 

지금 저의 심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한국불교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싶어 말문이 막힙니다. 무슨 투사도 아니고 출가 사문도 아닌데 10년 사이에 세 번이나 삭발을 하게 되다니. 재가인은 병이 아니고는 평생 한 번도 하기 어려운 것이 삭발입니다. 세 번째의 삭발을 감행하면서 만감이 교차되었습니다. 어느새 6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이 즈음에 또 삭발이라니. 나는 왜 이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지 스스로 되물어 보기도 했습니다. 나이를 의식하며 살지 않다보니 아직도 만년 청년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생의 후반부에 접어들었으면 이젠 조용히 관조하며 살아야 하지 않아?’ 라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는 옆지기 보살의 말도 일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남이 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더라도 지은 업이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지난 21일 대검찰청 입구에서 조계종 적폐청산과 자승 전 총무원장 공개 소환조사를 촉구하며 삭발하는 박종린 불력회 법사.

첫 번째 삭발, 역경보살 명예회복을 위해

첫 번째 삭발부터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발단은 당시 몸담고 있던 동국대학교 부설 동국역경원의 원장 해임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역경보살로 칭송받던 역경원장 월운스님이 어느 날 갑자기 재단으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본디 소심 하시지만 해임 소식에 상심한 스님은 역경원 후원회원들에게 떠나는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퇴임법회를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쓸쓸한 뒷모습을 남기고 스님은 역경원을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역경원장 해임의 부당성을 성토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기에 제가 나섰습니다. 말도 안 되는 부당한 인사를 성토하기 위해 삭발하고 다음 날부터 8만 4천배 용맹정진 기도에 돌입했습니다. 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을 우리말과 글로 번역한 역경보살에 대한 예우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매일 4천배씩 삼칠일 기도를 봉행하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월운스님의 스승이자 원조 역경보살인 운허노스님(1892~1980)의 오랜 주석처인 남양주 봉선사 큰법당 부처님께 알리는 것으로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날부터는 역경원장을 역임한 영암·자운·지관스님의 주석처인 봉은사·보국사·경국사를 비롯해 숨은 역경보살인 석주노장님의 칠보사를 돌아가며 부처님께 호소했습니다. 또 당시 재단 실세로 역경원장 해임의 주역노릇을 한 영담스님의 부천 석왕사 부처님께도 사천배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삼칠일 팔만사천배 기도를 회향하자 그제서야 저의 기도 소식을 접한 상좌를 비롯한 문도스님들을 중심으로 ‘동국역경원장 명예회복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조계사에서 대규모 규탄법회가 열렸습니다. 당시 금강선원 혜거스님의 규탄법문 중 “아무리 망나니 집단이라 하더라도 우리 시대 역경보살을 이렇게 홀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만행이다”는 사자후는 지금도 가슴 깊이 남아 있습니다. 그 후 재단 이사장인 통도사 영배스님은 스님을 찾아뵙고 ‘당신이 부재 중에 벌어진 일’이라며 변명 아닌 변명으로 백배 사죄를 하였고, 스님을 명예역경원장으로 추대하고, 명예박사학위까지 수여했습니다. 저 역시 재단의 고유권한인 부당한 인사를 성토하는 기도를 했다고 해직당하지 않은 것은 물론입니다. 결과적으로 기도가 성취된 샘입니다.

두 번째 삭발,  타락한 권승 대학운영 개입 반대

두 번째 삭발은 그로부터 6년 후인 2014년 말 경입니다. 당시 동국대는 후임 총장 선출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현 총장의 재임이 기정사실로 알려진 상황에서 느닷없이 보광스님과 일면스님을 총장과 이사장으로 낙점했다는 종단의 개입 사실이 결정타가 되었습니다. 말인즉슨 차기 총장과 이사장은 동국대 출신의 동문이자 스님으로서 나란히 함께 동국대 발전을 위해 발 벗고 나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도 모른 채 재임을 미리 축하해주기 위한 자리인줄 알고 종단 수뇌부와의 회동에 참석했던 당시 김희옥총장과 정련이사장스님은 ‘이번에는 스님 총장을 모시기로 했다’는 말에 사색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4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동국대 사태는 그로부터 발단이 되었습니다. 당시 동국발전을 염원하는 학생과 교직원, 동문들의 종단 권승들에 대한 성토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할 무렵 제가 또 삭발 용맹정진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권승들이 대학운영에 개입해서는 학교가 망가진다는 생각으로 다시 삼칠일 용맹정진에 들어갔습니다. 당시에 제가 내건 기치는 “구국구세 구종구교(救國 救世 救宗 救敎)”였습니다. ‘부처님힘으로 나라를 살리고 세상을 구하며, 종단을 살리고 학교를 명문화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단순히 총장을 반대하는 항의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습니다. 학생과 교직원과 동문이 한목소리로 그토록 간절히 외쳤건만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해 5월에 보광스님은 4수의 도전 끝에 꿈에도 그리던 총장으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취임 얼마 후 전교직원이 모인 비젼 발표 자리에서 그럴듯한 말로 폼을 잡고 퇴장하던 보광총장은 저를 보자마자 느닷없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일개 교직원이 말이야, 총장 반대하는 기도나 하고 그러면 못써!”라고 내지르는 참으로 가당치도 않은 모습을 연출하였습니다. 당신 말대로 자기는 꿈에도 그리던 총장이 되었고, 저는 일개 교직원에 불과한데, 거룩한 총장이 일개 교직원을 상대로 그런 험악한 말을 해서야 어디 총장 체면이 서겠습니까? 당시 현장에서 이 모습을 목격한 많은 교직원들이 제게 전화를 걸어와 위로 겸 총장을 성토하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이왕 총장이 되었으니 학교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오늘 총장이 하는 꼴을 보고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렵다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저 역시 어의를 상실할 정도로 기가 막혔습니다. 저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하고 말입니다. 저는 종단의 부당한 개입이 학교를 망치게 된다는 뜻으로 기도한 것일 뿐 당신 말대로 총장이 되지 말라고 보광의 'ㅂ'자도 꺼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취임 후 4년 임기가 다 돼가는 지금 보광총장에게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더구나 다시 총장 재임을 꿈꾼다는 말이 들리고 있어 더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스님이 그토록 염원했고 내가 총장이 되면 누구보다 학교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적임자라고 소리 높여 외쳤는데, 그동안 동국대가 명문대로 우뚝 설 수 있는 토대라도 마련했습니까? 당시 동국대 구성원들 대다수가 보광스님만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스님총장’은 안 된다고 한목소리로 외친 까닭을 알고나 계십니까? 종단 안팎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스님의 말을 믿었는지 몰라도 잘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지하셨습니까? 결과적으로 허풍이고 자기 합리화에 불과한 말인 줄은 인정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더러 총장 반대하는 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연봉 인상은커녕 10%를 삭감하는 그런 밴댕이 같은 속으로 대학 경영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어보지 않아도 답은 뻔하기에 기대하지도 않겠습니다.

▲ 박종린 불력회 법사

세 번째 삭발, 자승 적폐청산을 위하여 

그리고 이번의 세 번째 삭발입니다. 두 번째 삭발과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삭발입니다. 두 번째 삭발이 자승총무원장 시절에 이루어진 일이고, 이 번 삭발 역시 자승 종권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옹립한 설정 총무원장을 자신의 호위 세력을 통해 탄핵을 가결시켰고, 원로회의마저 움직여 추인케 하는 가히 자승천하임은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상식입니다. 재임 시나 퇴임 이후나 이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종단을 망가뜨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침묵한다는 것은 불자가 할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공개 수사를 촉구하는 삭발 용맹정진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도대체 누굴 위해 무얼 더 얻고 지키려고 종단을 이 지경으로 몰아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출가해서 불교공부는 안 하고 은사스님 따라 다니며 절 뺏는 것만 배웠다'라고 고백했어도 그렇지 얼마나 더 누리고 살려고 아직도 이런 모사를 꾸미고 있습니까? 밑바닥을 봐야 그만두시겠습니까? 참으로 한심하고 답답할 뿐입니다. 그래도 먹물 옷을 입고 마지 밥을 내려먹는 출가 사문이라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다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불교라는 대들보가 내려앉고 기둥마저 흔들거리는데도 나만 잘 살면 된다 라고 한다면 그보다 더한 어리석음이 없습니다. 불교라는 울타리가 살아있어야 그 속에서 지금처럼 안주할 수 있는 공간이라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 번의 삭발을 돌이켜보니 그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첫 번째 삭발은 성취되리라 믿었고, 또 전화위복의 좋은 결과까지 도출되었습니다. 두 번째 삭발은 성취되리라 굳게 믿었지만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삭발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기에 성취 불성취를 떠나 있습니다. 불과 10년 사이의 일임에도 이토록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지는지 스스로 놀라게 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으니 사람의 일이 변치 않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변하지 않아야 할 교단의 가치와 규율이 급속도로 무너지는 모습에 아연 실색할 뿐 입이다. 그 사이 교단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걸어왔고, 승가는 수행자집단이라고 부르기조차 창피할 정도로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태로 가면 불교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뻔히 예측되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려한다면 그것은 출가사문이 가야할 길이 아닙니다. 교단 파괴세력인 마구니가 머리 깎고 승복 걸친 채 절집에 들어와 삼보정재를 축내는 도둑놈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저는 10년에 세 번이 아니라 매일매일 삭발해야 되지 않을까 적이 염려스럽습니다. 이미 삭발한 상태이니 먹물옷만 걸치면 저도 스님이 되는 우스꽝스러운 형국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렇게 행세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이 없는 형편 무인지경이 되고 말았지 않습니까? 오늘도 어제 깎은 머리를 매만지며 제 자신에게 스스로 되물어 봅니다. ‘너 불자 맞니?’ 라고. 출·재가를 떠나 우리는 한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제자는 스승을 닮으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온 세상 다 둘러봐도 부처님 같으신 분 다시없다’고 한 그 자랑스런 부처님 제자임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같이 머리 깎은 사람으로서 부처님께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발원해 봅니다. 나무아미타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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