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는 하늘나라가 없다
하늘에는 하늘나라가 없다
  • 배길몽
  • 승인 2019.01.0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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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배길몽의 ‘지피지기’ 19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인간계 안에서 바라보면 대립적인 관계로 보인다. 그러나 동물계 전체에서 바라보면 남녀(인간)는 일반 동물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그룹으로서 자기들끼리만 친하게 지내는 매우 우호적인 관계다. 형제나 자매는 집안에서 함께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항상 서로 다투는 대립적인 관계다. 그러나 외부와 다툼이 발생하면 그들이 매우 우호적인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인류의 문제를 풀려면 남녀뿐만 아니라 보수와 진보도 대립적인 관계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우호적인 관계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과학자들은 전기 현상을 탐구할 때 전기를 음전기와 양전기의 대립적 관계로 해석한다. 그러나 전기 현상 밖에서 전기를 바라보면 음전기와 양전기는 다른 물질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들끼리만 서로 친하게 지내는 매우 우호적인 관계다. 과학자들이 부분적인 현상을 연구할 때는 사물을 대립적인 관계로 해석해도 별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우주 전체를 올바르게 해석하려면 모든 사물을 우호적인 관계로 다시 해석해야 된다. 그런데 기존의 과학자들은 사물을 대립적인 관계(음전기과 양전기, 전기장과 자기장, 물질과 에너지, 물질과 반물질, 하늘과 땅 등)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우주 전체를 설명하는 이론 즉 통일장이론을 만들지 못했지만 필자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을 바꿈으로써 통일장이론을 만들어 낸 것이다.

기존의 과학 이론은 모든 것을 대립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부분적인 현상을 설명할 때는 그럴듯하지만 우주 전체를 설명하려고 하면 서로 다른 영역 사이에 불연속이라는 모순이 발생한다. 과학자나 종교인과 상관없이 누구든지 공부를 할 때는 부분적인 사례나 자기 학문 혹은 자기 종교에만 집착하지 말고 두루두루 거시적인 시각으로 살펴보기 바란다. 다시 말해서 눈앞에 보이는 작고 부분적인 현상들을 살펴보고 그것을 섣부르게 사회나 우주 전체로 일반화 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신약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나 ‘하늘나라’는 하늘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주기도문에 나타나 있듯이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나라’ 혹은 ‘하나님이 사랑하고 선택한 나라’를 짧게 줄여서 ‘하나님의 나라’ 혹은 ‘하늘나라’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천국)는 하늘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실제로 땅위에 존재하는 현실의 나라’ 즉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면, 예수가 맨 처음 외친 ‘회개하라 천국(하늘나라)이 가까이 왔다.’라고 한 것과 주기도문에 있는 ‘나라가 임하며’라는 표현 등에서 사용된 ‘나라’가 모두 땅위의 나라를 의미했는데 실제로는 로마로부터 독립해서 주권이 회복된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은어(암호)였다. 다시 말해서 독립한 이스라엘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주기도문을 가르쳐준 다음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seek)’고 했는데 여기서 나라가 정말로 하늘나라라면 어찌 예수가 청중들에게 하늘나라를 구해달라고 말했겠는가? 나라를 구한다는(찾는다는) 것은 나라(이스라엘)를 로마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를 구하라고 한 말은 말 그대로 독립운동을 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천국이 정말로 하늘에 있는 나라라면 예수의 첫 설교에서 외친 것처럼 천국이 사람에게 가까이 올 수도 없으며, 주기도문의 표현처럼 나라가 세상에 임할 수도 없고, 그 다음의 설교처럼 인간이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나라를 구한다는 것이 식민지로 있는 나라를 독립시킨다는 것 말고 무슨 다른 의미가 있겠는가?

천국이 하늘에 있는 나라라면 죽기 전에 볼 수도 없으며(누가복음 9:27) 상속받거나(마태복음 25:34) 뺏기지도(마태복음 21:43) 않고 하나님에게 바쳐질 수도(고린도전서 15:24~25) 없다. 더구나 물질로 보상하거나(마태복음 19:29) 음식을 함께 먹는 나라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마태복음 26:29, 누가복음 22:18, 30). 마태복음 23:13절에 보면 기득권층이 천국의 문을 닫고 들어가는 것을 방해한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인간이 감히 천국의 문을 닫는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일제 강점기에 호의호식하던 친일파들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원치 않았듯이 유태인들 중에서 친 로마파의 기득권층들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방해하거나 방관하는 것을 비난하는 표현이다.

예수는 이스라엘을 현실적으로 다스리는 땅위의 왕이 되려고 시도했다. 예수가 주기도문에 있는 표현처럼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모두 가진 아버지(하나님)’로부터 왕권을 인정받아서(마태복음 16:28, 누가복음 22:29) 자신이 보좌(왕위)에 앉으면 제자들에게는 12지파의 수장이 될 수 있는 심판권(오늘날의 지방자치단체장의 권리)을 주고(마태복음 19:28, 누가복음 22:30) 재산을 팔아서 정치자금을 헌금한 일반 추종자들에게도 현세에서 여러 배의 물질로 보상하고 덤으로 내세의 영생도 보장한다는 대권공약을 발표하면서(마태복음 19:29, 누가복음 18:29~30) 자신의 왕국(‘주의 나라’, 마태복음 20:21)을 기획했다. 제자들은 그 나라가 당장에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고(누가복음 19:11) 예수가 승천(피신)하기 직전까지도 추종자들은 이스라엘의 회복(독립)에만 집착했다(사도행전 1:6). 제자들과 추종자들이 그렇게 기대하고 집착한 이유는 예수가 평상시에 천국(이스라엘의 독립)이 속히 이루어진다고 수없이 말했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적힌 예수의 죄명이 ‘유태인의 왕’인 것에서 나타나듯이 예수는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왕이 되려고 시도한 정치적인 반역죄로 처형됐다. 성경에 예수가 재림해서 왕위(영광의 보좌)에 오르며 임금이 된 예수가 심판을 한다고 사실적으로 표현돼있고(마태복음 25:31~40) 또 예수가 다윗의 자리(왕)를 물려받으며 그 나라가 무궁할 것이라고 했다(누가복음 1:32~33). 예수가 생물학적인 혈통으로 다윗의 후손(왕족)이기 때문에 임금의 자리를 물려받는다는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다는 것은 다시는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안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 나라가 하늘에 있는 나라라면 굳이 무궁할 것이라고 말할 필요가 전혀 없다.

성경이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다윗의 족보에 예수를 억지로 올리고 헤롯왕이 시기해서 예수를 죽이려고 한 것처럼 기록한 이유는 예수가 정말로 왕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예수의 추종자들에게 믿게 하려고 한 것이다. 예수가 종교적인 의미의 신이라는 것을 주장하려면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으므로 굳이 성경의 중요한 첫머리에 거창한 족보를 열거하며 다윗의 후손이라고 강조할 필요가 없다. 석가는 왕자이면서도 스스로 그 자리를 내려  놓고 평민이 되었는데 예수는 반대로 평민인 자신이 왕이 되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여기서 기독교와 불교의 근본적인 차이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욕망을 이루라고 가르치고 불교는 욕망을 버리라고 가르치므로 기독교 국가는 대부분 잘 살고 불교 국가는 대부분 못 산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기독교 국가에게 복을 주어서 자기들이 잘 산다고 자만한다.

성경 곳곳에 예수가 이스라엘을 구한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로마로부터 구한다는 뜻이다. 나라를 구한다는 것을 그것 외에 다른 뜻으로 해석하면 모두 엉터리 해석이다. 성경에서 구원한다는 것은 모두 물질적이며 육체적인 구원을 의미한다. 영혼을 구원할 때는 별도로 영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진짜 하늘나라를 표현할 때는 그냥 하늘이라고 표현한다. 주기도문에서 하늘에 있는 아버지와 사도신경에서 예수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표현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표현했으며 ‘천국(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라고 표현하지 않았고 사도신경에서도 예수가 ‘하늘에 오르시어’라고 표현했으며 ‘천국(하늘나라)에 오르시어’라고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천국’은 ‘하늘에 있는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경 곳곳에서 천국이나 아버지의 나라를 수없이 언급했지만 단 한 번도 그 나라가 이루어졌다는 말한 적은 없고 곧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하늘에 있는 나라는 이미 이루어져 있었으므로 주기도문처럼 나라가 임하기를 기다릴 필요가 전혀 없다. 

십자가에서 독한 술을 많이 먹고 혼절했다가 요행이 죽지 않고 깨어난 예수가 외국으로 피신했다가 로마가 종말로 멸망하면 귀국(재림)해서 ‘남은 자(살아남은 유태인)’ 중에서 깨어있는 자(예수를 믿은 자)를 데리고 하나님의 나라 즉 이스라엘을 재건하려고 했다. 우리나라를 ‘단군의 나라’라고 하듯이 유태인들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여호와; 야훼)의 나라라고 생각했으므로(성경 곳곳에서 여호와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한 것을 참조하기 바람) 하나님의 나라 혹은 하늘나라가 유태인에게는 자신들의 나라를 뜻한다. 또 메시아의 원래 의미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였으므로 예수에게 메시아라는 칭호를 부여한 것도 예수가 유태인의 지도자라는 뜻이었으며 지금과 같이 신적인 존재라는 뜻이 전혀 아니었다.

기독교의 성경을 의미하는 ‘복음’이라는 단어의 원뜻은 ‘기쁜 소식’ 혹은 ‘좋은 소식’인데 구체적으로 ‘종말이 가까웠다는 소식’을 말한다. 그런데 계시록에 의하면 종말은 지구가 멸망한다는 두려운 소식인데 왜 기쁜 소식이라고 했을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예수가 말하는 종말은 지구의 종말이 아니라 악한 세력들(로마와 유태인 중에 친 로마 기득권층)에게만 하는 종말이므로 종말이 가까웠다는 것은 로마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독립이 임박했다는 것이기 때문에 유태인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이다. 신약에서 사용되는 심판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죽은 사람의 영혼이 내세에서 받는 재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종말에 있을 악한 세력에 대한 현세의 심판을 의미하며(마태복음 11:24, 누가복음 10:11~12) 구원 또한 종말이 오면 육체의 생명을 구해주는 것을 말한다(마태복음 24:16, 누가복음 21:21). 성경에 보면 여행을 떠난 포도원 주인(마태복음 21:33~44, 누가복음 20:9~18)과 왕위를 밭으려고 먼 나라로 길을 떠난 귀인(누가복음 19:12~27) 그리고 주인과 종의 달란트(마태복음 25:14~30)에 관한 비유가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주인(예수)이 먼 길을 떠났다가(망명했다가) 돌아와서(재림해서) 사람들을 현세에서 심판한다는 것이다.

사도신경에 나오는 심판도 영혼을 심판한다는 뜻이 아니고 예수가 돌아와서(재림해서) 왕이 되면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물론 자신의 추종자(내 형제 중에 작은 자)들을 잘 섬기지 못한 사람들도 처벌한다는 뜻이다(마태복음 25:31~46). 사도신경에는 예수가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재림한다고 돼있는데 그것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예수가 재림하기 전에는 산 자는 물론 죽은 자도 모두 심판이 없다는 것이므로 성경에 있는 심판은 오직 종말에 있을 육신의 심판을 뜻한다. 참고로 사도신경에서 산 자를 심판한다는 것은 예수가 재림해서 살아있는 악인들(안티 예수 세력)을 죽인다는 뜻이고 반대로 죽은 자를 심판한다는 것은 예수를 위해서 죽은 사람의 생명은 부활시킨다는 뜻인데 모두 영혼이 아니라 육신을 죽이거나 살린다는 의미이므로 영생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예수의 제자들은 망명(피신)한 예수가 돌아오면 예수 자신이 부활한 것처럼 예수를 위해서 순교한 사람들도 부활시켜 줄 것으로 착각했다(마태복음 16:25, 누가복음 17:33).

구약에서 구원은 노아의 홍수로부터 구원, 애급으로부터 구원, 바벨론으로부터 구원 등과 같이 영혼이 아니라 육신을 구해준다는 것이며 신약에서 사용되는 구원도 가까이 온 종말에서 유태인들의 생명을 구해준다는 뜻이다. 정치적으로 육신의 생명을 구해주는 현세의 구원과 종교적으로 내세에서 부여되는 영원한 삶인 영생은 전혀 다른 것이다. 성경에서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영혼의 구원을 의미할 때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영생이라는 단어를 별도로 사용한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구원과 심판 그리고 천국건설(나라의 임함; 이스라엘의 독립)은 종말(로마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독립)의 시기에 현세에서 실제로 일어날 일련의 사건들이므로 기독교인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천국, 심판, 구원, 영생과는 전혀 별개의 개념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의미하는 ‘복음’은 유태인의 일부에게만 기쁜 소식이었고 인류 전체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으며 로마에게는 로마가 멸망한다는 슬픈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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