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서 불자라고 얘기할 수도..."
"어디 가서 불자라고 얘기할 수도..."
  • 연화수
  • 승인 2019.07.1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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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불교개혁운동과 올바른 신행

[뉴스렙] MBC 시사고발프로그램 <PD수첩> “큰 스님께 묻습니다”편이 방영된 이후 어디 가서 불자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도, 아이들에게 절에 가자는 말을 건넬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적폐청산과 불교개혁을 외치며 지난해 종로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위에서 여름을 났습니다. 이미 창피함과 분노를 넘어 선 감정이 인간의 체온을 넘어섰기에 바닥의 뜨거움 따위는 느낄 새도 없었습니다.

지난해 5월 1일 방송된 PD수첩 '큰 스님께 묻습니다' 편
지난해 5월 1일 방송된 PD수첩 '큰 스님께 묻습니다' 예고편 갈무리

 

각 단체가 불교개혁행동이라는 연대체제로 하나가 되어 지금까지도 불거지는 이슈마다 성명서를 발표하고 서명을 받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등의 꾸준한 운동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한순간에 개혁이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도 안했지만 종교인으로서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양심마저 저버린 채 자리에 권력에 연연하는 출가자들을 볼 때마다, 출가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실천하고 수행하시는 그 분들께 존경과 귀의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게 억울할 지경입니다. 물론 종단전체가 모든 사찰이 모든 스님이 적폐청산의 대상은 아닙니다. 몇몇 분들의 잘못으로 전체가 지탄의 대상처럼 비추어 지는 현실이 가슴 아프기도 합니다.

저는 평범한 불자입니다. 제 가족과 지인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로 힘을 보태는 저를 보고 몇몇 선배님들은 기복신앙이라며 바른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 가족과 주변이 편해야 이웃에 대해 또 사회와 나라에 대한 기도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 엄마가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정상적인 신앙생활의 기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 아닌 사람은 이미 내가 아닌 타인이고, 내가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한 기도를 하는데 그게 꼭 기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의 자승 퇴진 촉구 집회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의 자승 퇴진 촉구 집회

 

작년 여름엔 막내가 고3이라 수능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불교개혁을 부르짖으며 보시금 안내기 등의 운동을 펼치다 보니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엄마들이 가장 열심히 종교생활을 할 때가 자녀가 고3 때인데 기도를 올릴 수도, 보시함에 돈을 내는 것도, 문제가 불거진 스님들 계신 사찰을 가기도 찝찝한 상황이 됐습니다. 첫째, 둘째 아이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불교개혁보다는 엄마의 마음이 우선이었습니다. 사찰 3군데에 기도도 올리고 수능이 끝나고 논술시험 보러 다니는 한 달 내 틈 날 때 마다 절에 가서 초도 켜고 기도도 하고 왔습니다. 그러나 갈등을 일으키는 마음자리 느끼며 기도를 하다 보니 한곳으로 마음을 모으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제게 형상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을 내야 한다고 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게 했고, 과연 불자로서 이 나라에 불교가 바르게 서게 하려면 어떤 일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물음을 품게 했습니다. 내가 절을 멀리하고 법문 듣기와 경전공부를 게을리 하고 기도생활을 멈추는 것이 그 답은 아니라는 결론입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눈을 감고 제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을 꾸준히 하니 제 안의 양면성이 보입니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보수진영에 서면 진보세력의 입장이 강해지고, 진보진영으로 옮겨가면 위축되고 보수적인 마음이 생깁니다. 분노의 마음을 가지고 동참했으나 나의 생각과 타협이 어려운 지점을 만나면 보수세력으로 돌아서고 싶어지고, 진보세력을 욕하는 무리에 끼면 반발심이 생기고, 나의 안에서 벌어지는 양면적인 이 마음조차도 조율을 못하면서 남의 잘못을 탓할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여러 자리의 마음들을 만나고 대응하면서 저는 제가 공부가 부족하고 아직 무명 속에서 머물고 있어 지혜의 눈을 뜨고 있지 못함을 느낍니다.

때마침 불교개혁행동이 기본 목적뿐만 아니라 청정불교, 참여불교, 인재양성 등 다양한 인프라 구축을 통한 효과적인 불교개혁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한국불자회의”(가칭)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을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발제자는 우리가 자기주도적으로 부처님 법을 항상 내 안에 지니고, 오프라인 회관에 모여 불교적 일상과 보살행을 공유하고,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어 널리 퍼뜨림으로써, 나도 바뀌고 불교도 바뀔 거라는 믿음을 갖고 큰 울림을 만들어 보자고 말합니다. 각 단체의 역량에 기반을 두고 협업체제로 운영할 것이라는 관계자의 말에 내 안의 갈등을 해소할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불교가 어렵고 힘들 때만 찾는 종교가 아니라, 늘 깨어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언제나 곁에 두어야 할 신앙생활이라 생각하고, 위태로울 때 지혜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공부하고 실천에 옮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겠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나와 내면의 나를, 나와 가족을, 나와 이웃을 이어주고 사회 속에 나를 머물게 하는 인연의 끈이 되어 줄 것입니다. 하심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속에 새기며 나를 낮추려는 습이 쌓여 모든 관계가 원만해 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 봅니다. 사부대중 모두의 마음이 이렇게 한 곳으로 모여들었으면 좋겠습니다.

/ 연화수(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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