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보원사지
서산 보원사지
  • 김규순
  • 승인 2019.07.2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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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규순의 풍수이야기 157.
▲ 드론으로 찍은 보원사지 영역 / 금당과 오층석탑 그리고 당간지주가 나란히 서 있다. 당간지주 왼쪽으로 표시된 곳은 대형 석조이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서산시 운산면에 내렸다. 보원사 사무국장님이 마중나오셨다. 그의 자가용을 타고 보원사로 향했다. 좁다란 용현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만나는 넓은 공간에 당간지주와 오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화엄사찰의 지형적 특징은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위치하였고 20리 안팎에 마을이나 농경지가 있는 곳에 입지했다.

▲ 당간지주를 통해 본 오층석탑 / 간략하고 단정한 느낌이 강력하다. 다만 뒷산이 옹골차게 우뚝 서지 않음이 아쉽다.

서산 보원사지는 사적316호로 지정되어있다. 현재 절터에는 5개의 보물 즉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04호)·당간지주(보물 제103호)·석조(보물 제102호)·법인국사보승탑(보물 제105호)·법인국사보승탑비(보물 제106호)가 남아 있다.

▲ 파손된 석물 / 보원사가 폐사되면서 부서지고 흩어진 석물을 한 군데 모아놓았다.

보원사는 최치원의 <법장화상전>에 화엄십찰 중 하나이다. 화엄십찰은 12개 사찰로 웅주의 수사·보원사, 양주의 범어사·미리사, 강주의 해인사·보광사·옥천사, 무주의 화엄사, 전주의 국신사, 삭주의 화산사, 상주의 부석사, 한주의 청담사로 통일신라시대 9주 중 8주에 각각 배치하였다.

▲ 보원사지 출립계단과 오층석탑 / 천년의 세월에도 흐트러짐이 없는 오층석탑에서 부처님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보원사지는 화엄십찰로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알려지나, 백제사찰을 의상께서 중창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부근에 백제 위덕왐(554-597)때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제84호)이 있어 백제시대의 사찰로 봄이 마땅하다. 지금 폐사지가 되었으나 발굴에 의해 그 규모가 상당하였음을 알수 있다. 특히 고려시대 국사가 거처하던 절이었으니 매우 융성하였을 것이다. 보원사지의 금당은 정동향이다. 화엄사찰이 모시는 비로자나불은 동향으로 배치하기 때문이다.

▲ 보원사지를 자원봉사로 관리하는 보원사 / 2004년에 농가를 매입하여 설립한 보원사는 보원사지의 역사를 계승하며, 사적지 보원사를 자발적으로 청소하고 보존에 힘쓰고 있다.

보원사지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사찰의 규모가 더 키웠을 것이다. 그 이유는 신라가 백제유민들을 위무하고 신라의 백성으로 맞이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종교를 이용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실제로 익산 미륵사지도 통일신라시대에 사찰의 규모가 더 커졌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 철조여래좌상 / 보원사 법당에는 복사품을 모셔놓고 있다. 원래 보원사지에 있었던 철조여래좌상이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보원사지의 당간지주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백제시대에는 개천의 서쪽에만 사찰이 있었을 것인데 통일신라시대에 개천을 넘어 확장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 구조물이 당간지주이다. 보원사지에서 기도할 수 있는 곳은 마애여래삼존불상과 오층석탑 두 군데이다. 천년을 견뎌온 그 내공이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다. 마애여래삼존불상에는 보원사 스님께서 매일 09-10시까지 예불을 올리므로 동참하여 기도를 올릴 수 있다. 그리고 천년세월 자리를 지켜온 오층석탑의 탑돌이도 강력 추천하는 기도처이다.

▲ 보덕사지의 안산 /보원사지의 금당이 향하는 방향을 보면 안산의 정상을 향하고 있다. 안산으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건물에 있어서는 풍수적으로 안산이 주산만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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