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진담] ‘강남원장’ 풍찬노숙 무엇을 얻으려 하나
[취중진담] ‘강남원장’ 풍찬노숙 무엇을 얻으려 하나
  • 서현욱 기자
  • 승인 2019.09.3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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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자 부담 안 준 한경직 목사와 대비…‘은퇴’와 ‘빈 손’ 보여야 큰 어른

자승 전 조계종 총무원장이 ‘풍찬노숙’을 한다. 올해 동안거를 하루 한 끼만 먹으며 천막에서 묵언정진하겠다는 것. 탑골공원과 광화문 광장에서 풍찬노숙하는 방안을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나온지도 수개월이다. 결국 풍찬 노숙의 장소는 조계종단이 매입한 위례신도시 종교용지 안으로 결정했단다. 천막선방 이름은 상월선원(霜月禪院)이다. 이름도 멋지다. 서리를 맞으며 달을 벗 삼아 수행하는 곳.

한 교계언론은 자승 전 원장 등 9명의 풍찬노숙에 “역대 수행결사와 일맥상통”한다고 평가도 했다. 한국불교의 위상을 제고하고, 산중불교를 도심불교로 전환하는 일대의 계기라고도 했다. 선승과 행정승, 이판과 사판의 벽도 허무는 등의 긍정적 평가를 내놓았다. 생명을 내건 치열함으로 한국불교를 바꾸려는 거룩한 풍찬노숙을 대중은 어떻게 바라볼까.

“수백억 투입될 포교도량 부지에서 풍찬노숙?”

대중의 시선은 곱지 않다. 총무원장을 퇴임하고도 조계종단을 좌지우지하는 자승 전 원장이 수백억 원이 투입돼야 하는 신도시거점포교도량 부지에 천막을 치고 눌러 앉아 안거한다는 데에 고갯짓을 한다. 단순히 보여주기 수행을 우려하는 게 아니다. 

풍찬노숙 장소인 경기 하남 감이동 일대 1만㎡(약 3025평) 부지는 당초 불교문화유산보존센터와 신도시거점도량을 설립하려는 곳이다. 조계종은 인허가, 운영비 등 문제를 이유로 불교문화유산보존센터를 경기 화성 용주사에 건립하는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조계종 관계자에 따르면, 용주사 템플스테이 체험관 2개동 가운데 1개동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불교문화유산보존센터를 짓는다. 위례신도시 부지는 봉은사가 거점포교도량 건립을 책임지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개운사에 건립하겠다고 발표한 10·27법난 치유센터를 동대 일산병원 인근에 건립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세종신도시 포교거점도량 등 자승 전 원장 재임 때부터 진행된 사업의 방향들이 다시 조정되고 있는 것이다.

위례신도시 등 불사에 들어갈 재정이 궁금하다. 봉은사가 확보할 거액의 토지보상금(?)이 위례신도시 불사에 투입되는 방안이 회자된다. 봉은사가 총무원에 승려노후복지기금 수백억 원을 기탁하고 나머지는 위례신도시 등 불사에 쓴다는 것이다.

봉은사 회주·영빈관 관장이자 강남원장이 왜 풍찬노숙

자승 전 원장은 봉은사 영빈각(템플스테이) 관장이고, 봉은사 회주로 불리며 현직 총무원장이 주지인 '직영사찰 봉은사’를 장악했다. 명실상부한 ‘강남원장’ 모양새를 갖춘 셈이다.

강남원장의 풍찬노숙을 순수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많지 않다. 여전히 종권을 놓지 않고, 무문관 수행조차 신뢰받지 못하는 그가 천막에서 풍찬노숙하며 안거를 보낸다는 소식에 대중은 “또 뭘 노리는 것이냐”고 묻는다. 위례신도시 포교거점도량 불사 계획 발표 전에 이 부지에서 풍찬노숙한다니 “노림수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것이다. 봉은사에 들어올 거액의 토지보상금(?), 위례신도시 거점포교도량 건립 전 상월선원 개설, 봉은사 회주, 창건주 권한 등등. 거액의 재정이 투입되는 불사 얘기가 나오는 곳에서 풍찬노숙을 한다. 대중들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풍찬노숙, 감로수·달력 검경 수사 지연 작전?

자승 전 원장은 두 건의 고발 사건 조사를 받아야 한다. 감로수 생수 사업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고, 달력 사업과 관련해서는 국고보조금 횡령 등 건으로 수사를 받아야 한다. 풍찬노숙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피고발인이 안거를 핑계로 각종 사건의 수사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당당하면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대중의 이목을 피해 몰래 조사 받고 나오는 거나, 안거를 이유로 수사를 지연시키는 게 능사는 아니다.

무문관 용맹정진을 했다는 자승 전 원장이 봉은사 영빈관 관장으로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맡는다고 했을 때도 대중은 헛웃음 지었다. 그런데 이번엔 풍찬노숙이다.

자승 전 원장의 행보는 늘 이해관계와 이권이 있는 곳에서 마주친다. 수행자의 면모를 대중이 인정하지 않는다. 

자승 전 원장은 어느 자리에서인가 “날 가만히 내버려두라. 조용히 살고 싶다.”고 했단다. 그런데 그의 걸음은 늘 조용하지 않다.

▲ 2015년 5월 15일 당시 자승 총무원장은 포교원장 지원 스님,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 도법 스님, 새로 임명된 총무부장 지현 스님을 비롯한 총무·교육·포교 등 3원 부·국장과 산하기관 교역직 스님 30여명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1층 로비에서 108참회정진을 입재했다. 이후 자승 스님은 총무원장 집무실에서 108배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후임자 부담 느낀다”고 교회서 멀리 이사한 한경직 목사

자승 전 원장의 행보는 한국 개신교계의 큰 어른인 한경직 목사의 삶과는 비교된다.

“나는 아무 것도 없다. 땅 한 평, 집 한 칸이 없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남기는 것은 없지만, 너희들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다.”

지난 2000년 4월 19일, 98세로 삶을 마감한 한경직 목사가 가족에게 남긴 유언이다. 그는 1973년 목회를 마감하고 세속을 떠나 남한산성에 은거했다. 후임자가 부담을 느낄 것을 우려해서 일부러 교회와 먼 곳으로 이사를 했고, 목사인 아들과 사위에게도 지위와 권한을 물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생을 마감할 때 남한산성 기슭 6평 거처에는 1인용 침대와 안경, 낡은 양복 몇 벌, 휠체어, 겨울 털모자, 생필품, 낡은 성경책이 전부였다. 평생 통장을 만들지 않고 소유하려하지 않았다. 가난한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

한 목사는 1920년 12월 29일 평안남도 간리에서 태어나 조만식에게 사사하면서 민족과 조국에 눈을 뜨게 됐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모자원과 고아원을 세워 그들을 돕고, 평생 조국의 번영과 미래를 위한 교회의 역할을 부단히 고민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한 때 ‘1분 만장자’였다. 테레사 수녀가 첫 수상자였던 종교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을 1992년 아시아인 최초로 수상했다. 템플턴상 수상 후 상금 102만 달러를 북한 선교헌금으로 전액을 내놓았다. 한 목사가 “1분 동안 백만장자가 돼 봤다,”고 말한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어려운 시절에도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고 옷이 생기면 거리의 노숙자에게 입혔다. 청빈했지만, 그를 실패한 목회자 바보 목사라고 부르는 이도 많았다. 한 목사에 평가는 조금 엇갈리고, 보수적 인물로 비판도 받는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계의 큰 어른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한 목사의 ‘아름다운 빈 손’은 ‘무소유’였다. 붓다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같은 ‘빈 손’을 한 목사는 실천했다. 그는 많은 것을 갖고도 국가와 민족,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길을 선택했다.

진정한 ‘은퇴’해 ‘빈 손’ 보여야 큰 어른

자승 전 원장은 한 목사와는 다른 길을 걷는 것으로 보인다. 임기 8년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고, 설정 총무원장과 원행 총무원장을 선출하는 데 막강한 힘을 보여줬다. 설정 원장을 자신의 힘으로 뽑아놓고 문제가 생기자 한마디 참회도 없이 탄핵하도록 했다. 퇴임 후에도 ‘은퇴’하기보다 총무원장이 당연직 주지인 강남 봉은사의 템플스테이 관장으로, 회주로서 ‘강남원장’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중앙종회의원들이 ‘강남어른’의 재가를 기다린다. 교구본사주지가 되려는 이들도 ‘강남 원장’을 눈치보고 조율한다.

한국불교의 위상을 제고하고, 선승과 행정승의 벽을 없애는 수행이라면 좋겠다. 종단의 큰 실력자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참회하는 심정으로 서리를 맞으며 달을 벗 삼으면 누구나 박수 칠 게 뻔하다.

중앙종회의원 복귀설도 회자된다. 총무원장까지 하고도 중앙종회의원으로 복귀하겠다는 것이다. 자승 전 원장은 ‘총무원장에서 퇴임했을 뿐 정치는 ’은퇴‘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 같다. ’퇴임‘과 ’은퇴‘는 이미 수행자의 말은 아니다. 정치를 삶의 중심에 둔 수행승은 상상하기 어렵다. 풍찬노숙이 대중에게 인정받고, 감시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내려놓아야 한다. 봉은사 회주를 내려놓고, 불사와 종단의 각종 이해관계에 개입 말고, 종권에서 멀어져 바랑 메고 훌쩍 떠나 깊은 산 좋은 도량에서 청빈하게 서리 맞으며 달을 벗 삼는 게 대중의 신뢰를 얻은 방법일 것이다.

큰 어른이 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큰 어른의 힘은 권력이 아니라 청빈한 삶을 모범 보여야 나온다. ‘빈 손’으로 돌아가야 ‘어른’이고 불교 수행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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