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 구상 시인을 생각한다
탄생 100주년 구상 시인을 생각한다
  • 소암 스님
  • 승인 2019.11.2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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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종교와 문단의 산증인

지난 11월 초 오랜만에 왜관의 베네딕토 수도원에 다녀왔다. 아마 20여 년 만일 것이다. 구상 선생과 절친인 부산의 원로 시인 노석 선생과 서예가로 구상 선생의 서재 관수재를 쓴 율관 거사님과 동행한 길이었을 것이라고 기억한다.
무궁화 열차로 역에 내리니 수십 년 전의 시골 정취가 물씬 나 매우 반가웠다. 지난봄에도 시인의 작품을 비석으로 세운 대구 '고모령'역에 가서 이미 폐지된 고모령 역이었으나 6·25의 모자 상봉이 눈물겨운 옛 자취를 볼 수 있어 가슴이 뭉클했는데 이번에도 늦가을의 국화를 보며 작은 카페며 목로주점 같은 옛날의 작은 식당과 포근한 역전 거리, 철길 따라 양옆으로 펼쳐진 플라타너스의 금빛 단풍을 보면서 도로를 산책하였다. 역전의 미니 카페 앞에서 이쁜 어린이가 비눗방울을 날리며 몸을 돌리는 맴맴 춤을 보며 잠시 어릴 때의 동심에 젖기도 했다.
십여 분 걸으면 나타나는 '베네딕토 수도원'은 예전과 변함없이 그 자리에 조촐하고 아담하게 자리했다. 다만 다른 것은 주위가 신도시로 탈바꿈해서 고층건물이 들어섰다는 것이다.

이윽고 수도원에 들어서 건물과 풍경을 살펴보니 원래의 20년대 성당은 폐쇄하고 언덕배기에 신축 성당을 포함한 복합건물을 지어 초대손님이 건물로 들어가는 게 눈에 띄었다. 일반 신도는 뒤에 앉고 앞에는 기념사업회원들이 자리 잡고 앉았다. 나도 앞에서 중간쯤 앉아 주위를 돌아보고 오랜 지인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잠시 후 합창단이 들어서 천상의 음악을 들려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에서 내려온 '무지카사크라' 서울 합창단으로 가톨릭 합창단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악기 연주에 역시 '알테 무지크 서울'이 맡았고 르네상스 이후의 바로크 음악을 전공한 분이 창단해 수도권에서는 유명한 실내악단으로 합창단과 멋진 앙상블을 선보였다.
특히 일반 악단에서는 보기 드문 바로크 시대의 악기 '하프시코드'의 오묘한 연주와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의 장중한 연주는 황홀한 감동으로 청중들을 이끌었다. 바흐와 비발디, 브람스의 성가가 울려 퍼지고 교회 합창단의 경건하고 청아한 노래가 아담한 대성당을 꽉 채울 때 나도 모르게 환희와 감동의 눈물이 났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좌우를 돌아보니 여러분이 눈물을 훔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모든 종교와 예술은 나름대로 감동을 갖고 있지만, 음악은 어떤 것보다 인간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넓게 보면 노래와 악기 연주, 춤이나 종교의 전당에서 일상으로 행하는 기도 염불과 의식도 그런 범주에 들 것이다.
합창단원의 클래식 성가와 '그레고리안 성가'를 듣다가 오래전 티베트 대사원에서 들은 백여 명의 티베트 승려들이 낭송하는 합창이 생각났다 샹그릴라의 대사원에서 예불 의식 때 주지 승려는 어쩌면 가톨릭 대주교의 복장과 똑같이 머리에 모자를 쓰고 붉은 법복에 화려한 수를 놓은 가슴띠를 둘러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 후 자료를 찾아보다가 어떤 종교음악을 연구하는 학자가 그레고리안 성가는 먼 티베트에서 나온 음악일 가능성이 높다고 논문에 썼다.
쌍계사 진감국사비에 신라의 대표적 문장가 최치원이 쓴 글을 보면 한국불교의 범패梵唄, '천상음악'이 진감국사가 인도에 가서 연구하고 수입한 인도와 티베트를 포함한 중앙아시아의 음악이며 우리 국악의 뿌리라고 증언한 분은 기독교인 중앙대의 전일평 교수다.

이렇듯 문화와 예술은 동과 서로 남과 북으로 상호교류하고 전해졌다. 무역과 문화교류가 활발했던 천 년 전 실크로드 시대 훨씬 이전에 동서 문명이 교류한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덧붙이면 기원전 3세기에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 대왕은 불교문화를 그리스 이집트 중동에 전했고 기원후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통해 동양에 불교가 전해졌으니 훨씬 늦은 시기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동양에 먼저 불교가 전해졌다고 믿는 것은 오류라고 '아소카대왕전'을 펴낸 수녀 출신의 비구니, 재미 교수 일아스님의 연구 성과다. 물론 일본과 서구학자들의 저술에 나와 있는 것을 일아스님은 참고했을 것이다.
 
구상 선생의 독특한 삶의 이력
 
세 시간에 걸친 음악회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소프라노 임선혜 씨의  우리에게 익숙한 '주님은 나의 목자'와 아베마리아 구상 선생께서 평생 좋아한 바우고개 그리운 금강산의 가곡 열창에 몇 번씩이나 앵콜 독창을 끝으로 기념 공연이 끝났다.
중간에 나온 유가족과 이해인 수녀가 나와서 인사하고 시인으로 인도한 구상 선생을, 어릴 때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에 아버지와 스승 같았다고 고백한 해인 수녀가 박수를 받았다. 그는 오래전 병을 앓고 건강이 안 좋았는데 봄에 볼 때보다 몸과 마음이 해맑게 보였다.

구상 선생은 서울 이화동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원산 부근의 덕원 베네딕트 교회 일을 본 부친을 따라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장성해서는 친형이 신학교에 들어가면서 나중에 자신도 신학교에 다녔다. 성직자보다는 문학에 뜻이 있어 일본에 밀항하고 일본 종교대학에 들어갔으나 승려들이 교수인 불교대학인 줄 몰랐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훗날 구상 선생이 특정 종교만이 아니라 범종교의 넓은 안목을 가지게 된 것은 불교의 가르침을 받은, 치우치지 않은 종교관 덕이라고 기술했다. 그래서인지 선생은 일생 동안 불교 용어를 즐겨 인용했다.

다시 귀국해 북한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해방을 맞이하면서 잡지 '응향'에 자유주의 성향의 작품을 발표했으나 사회주의 정부가 검열을 하고 체포될 무렵, 탈출을 감행했다. 친형인 '구대준 신부'는 그때 납치되어 생사불명 되고 현재 복자 시복 대상에 올랐다. 동생인 그는 50년 6·25 전쟁 때 북진을 해서 70세 노모를 모셔오지 못한 일과 함께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그때의 일로 구상 선생은 반공 작가로 종군기자로 활동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친교를 맺었다고 했다.

50년대 이후 수년간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비판하면서 옥고도 6개월간이나 치렀다.
민주당인 장면 정권에서 평생 친구인 설창수 시인이 참의원에 입후보하고 선생도 국회의원에 출마할 것을 종용 받았으나 거절했다. 정치는 자유인인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고 얼마 후 친구인 박정희 정권에서도 일체의 공직을 사양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비교문학을 가르쳤다.
삼선개헌을 하고 유신정권이 들어설 무렵 두 편의 시를 통해 박정희가 독재자로 변하는 것과 개발 지상주의와 황금만능주의의 사회현상에 실망하고 환멸을 느끼면서 비판시를 쓰기도 했다.
 
그는 샤먼이(무당) 되어 있었다.
그 장하던 의기가
돈키호테의 광기로 변하고
 
그 질박하던 성정이
방자로(오만) 바뀌어 있었다
 

......
 
 
구상 선생은 종교와 문학이 단순히 자기 구제와 자기 위안이 아니라 '홀로와 더불어 존재할 때 '가치가 있다는 존재론적인 철학과 믿음을 평생토록 간직하고 실천한 분이다.
사회성이 강한 데카르트와 사르트르의 존재론보다 '가브리엘 마르셀'의 종교에 기반한 유신론적 존재론에 정신적인 기반을 두고 종교, 사회와 문학에 깊은 통찰과 사유, 나아가서 약자의 연민과 세상을 함께 보듬는 불교의 '동체대비' 사상에 고뇌와 화두를 품은 구도자와 같은 성자의 삶을 살았다.
동란 중에 만난' 공초 오상순' 시인을 스승으로 모셨고 공초 선생이 머물고 마지막 임종한 조계사에서 장례식을 치를 때 장례위원장을 맡아 정부의 지원으로 거리행렬을 하는 사회장 형식의 장례를 치렀다.

독신으로 살다간 공초 선생의 문학상 제정도 선생이 만들었다. 나도 몇 차례 공초 선생의 기일 제사에 중광, 정휴, 장이두 스님 등과 참여했다.
가신지 15년이지만 구상 선생의 족적은 넓고 깊다. 암울한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 전쟁과 독재 치하와 산업사회를 겪으면서 우리는 수많은 곡절과 고통의 터널을 보냈다.
음악회가 천여 명 참석인원의 열렬한 호응으로 끝나고 조촐한 다과회에서 박현동 아빠스 수도원장, 80세가 넘은 원로 수도사들,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오던 길을 황금빛 은행나무를 바라보면서 걷는 길은 무척 유쾌하고 상쾌했다.
신선한 가을날의 청량감이 충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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